지난 2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총신대 종합관 출입구가 학생들이 쌓아놓은 의자로 막혀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지나간 아픔도 마주할 세상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28일 낮 서울 동작구 총신대 종합관 1층.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들린 노랫소리는 학생들이 부르는 시시엠(CCM)이었다. 총신대는 전교생이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 신자다. 입학을 위해선 세례교인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두 달째 점거 중인 농성장에선 흔한 민중가요 대신 찬양이, 손팻말이 아닌 학교 정상화의 염원이 담긴 기도카드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지난 1월29일 시작된 총신대 학생들의 점거 농성이 29일로 60일째를 맞는다. 총신대는 지난달 24일 용역업체 직원들이 1차 농성장 진입을 시도한 이후인 지난 9일 ‘정상 수업 방침’을 밝히며 뒤늦은 개강을 강행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찾아온 현실은 ‘천막수업’과 사실상 휴강인 출석체크 뿐이었다. 학생들이 점거한 종합관(본관) 강의실을 사용할 수 없어 부족한 공간을 대체할 ‘천막 강의실’을 만들었다는 게 학교 쪽의 설명이다. 총신대는 17일 밤 40여명의 용역업체 직원들과 학생들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19일부터 30일까지 임시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점거 농성이 60일을 넘기게 될 거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처음 점거를 시작할 당시 학생들은 늦어도 3월 개강 전 교육부가 개입해 문제가 해결돼 농성을 풀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김현우(신학과4) 총학생회장은 “지난해부터 김영우 총장의 비리를 알리기 위해 총장의 교비 횡령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과 교육부 민원제기 등을 해왔다”며 “교육부가 지금보다 좀 더 빨리 총신대 문제에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21일 총신대에 대한 운영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당초 사흘간 진행하기로 했던 조사는 28일까지 연장된 상태다.
학생들이 학사 파행을 감수하며 점거 농성에 돌입한 건 지난해 9월 검찰에 기소된 김영우 총장이 같은 해 12월 7대 총장으로 재선임됐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부총회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로 전 총회장에게 2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총장은 자신이 기소되기 일주일 전,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교원에 대해서는 직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법인 정관 1조를 삭제했고, 그 결과 총장직을 연임하게 됐다.
학생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김 총장의 비리 의혹 이면에 ‘학교 사유화’ 목적이 있다고 비판한다. 곽한락 총신대 신학대학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영우 총장이 학교 총장직을 유지한 상태로 부총회장 후보로 나서려 했던 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겸직금지 규정’에 어긋난다”며 “이는 김 총장이 총신대의 3대 운영주체인 ‘총장-총회-재단이사’ 관계에서 총회를 장악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17일 밤 용역업체 직원들이 종합관 4층 전산실 진입을 시도한 사건이 있은 직후 학생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1층에서 건물에 출입하는 학생들의 신원을 확인했던 재학생 지아무개(22)씨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착용했던 검은색 마스크와 목장갑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몸이 떨린다”며 “교육부의 조사가 시작된 후 용역업체가 철수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집에 다녀오는 주말이 되면 용역이 또 진입을 시도할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고 호소했다.
점거 농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총신대 동문들과 전국 교회에선 농성에 참여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전기장판과 이불, 각종 간식거리 등 후원금과 후원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수업을 거부하고 농성에 참여한 김하은(21·유아교육과2)씨는 “동문들이 보내준 전기장판 덕분에 따뜻하게 자는 편이지만 화장실 세면대에서 간신히 머리를 감고,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는 게 불편하다”며 “그래도 김영우 총장의 퇴진을 이끌어내려면 이 방법(점거)밖에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재학생이 이번 점거 농성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영우 총장이 발행인으로 있는 ‘총신대보’가 지난 8일부터 사흘간 재학생 2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총학생회의 시위 방식에 ‘불만족’ 의사를 밝힌 학생 비율이 59.7%(139명)로 ‘만족’한다고 답한 45.1%(105명)를 넘어섰다. ‘시위의 발단과 이유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란 물음에 74.1%의 학생이 “잘 파악하고 있다”고 답한 것과 비교할 때 김영우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점거 농성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그로 인한 학사행정 마비에 따른 불편과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총신대는 학부에 개설된 9개 학과 중 5개 학과(기독교교육과·영어교육과·유아교육과·역사교육과·아동학과)가 봄철 교생실습 등을 나가는 학과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질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범계열 재학생 신아무개(23)씨는 “4월에 나가는 교생실습은 지난해 가을 이미 해당 학교 쪽과 협의가 됐지만, 학교 행정이 마비돼 학교로부터 실습비를 받지 못한 상태다”라며 “일단 개인 돈으로 실습을 마친 뒤 학교에 영수증을 제출해 청구하기로 했지만, 이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점거 농성에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답해했다.
이런 이유로 김영우 총장의 퇴진이 결정되더라도 총신대의 내부 갈등이 봉합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학생 박아무개(22)씨는 “처음엔 다 같이 김영우 총장의 퇴진을 지지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학교 상황에 상처를 받고 마음이 힘들어진 친구들이 생기는 것 같다”며 “농성장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느라 이번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의 마음을 신경 써주지 못해 속상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현우 총학생회장은 “학교 쪽이 ‘천막 수업’을 강행하며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과 수업 참여를 원하는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교육부가 비리 의혹이 있는 김영우 총장과 재단 이사들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임시이사를 파송하는 게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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