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무 기자
[현장에서]
30일 아침 <동아일보>를 한참 뒤졌다. 아무리 뒤져봐도 전날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한 동아일보사와 한겨레신문사 사이의 소송 결과를 다룬 기사를 볼 수 없었다. <한겨레>의 2001년 ‘언론권력 시리즈’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동아일보사가 제기한 1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동아일보사는 1년여 전 이 사건 1심 판결 때는 판결 취지를 완전히 왜곡하는 보도를 했다. 당시 법원은 동아일보의 친일 행각과 사옥을 둘러싼 의혹들, 유신권력과 결탁해 기자들을 무더기 해직한 사실 등 <한겨레>가 보도한 20여건의 기사 대부분에 대해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이 신문사가 낸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족벌언론들이 한겨레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만평과 이를 간단히 언급한 사설 등 2건에 대해서만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설과 만평은 족벌언론의 횡포와 폐해를 본격적으로 다룬 ‘언론권력 시리즈’ 기사와 무관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한겨레, 동아·조선 관련 허위보도”, ‘법원, 악의적 비난-객관성 없는 비판 허용안돼, 명예훼손 배상판결’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초판 제목은 “한겨레 언론권력 시리즈는 명예훼손”이었다.
이 기사만 보면 한겨레 보도가 법원에서 허위·비방 보도로 판정을 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일제시대의 노골적인 친일행위와 지하철 노선까지 휘게 하는 횡포 등 언론권력 시리즈의 내용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모호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과장하고, 불리하면 못 본 척하는 태도는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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