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5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 기공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함께 발파버튼을 누른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삼성의 220억 제3자 뇌물 혐의를 입증할 ‘부정한 청탁’이 최순실씨 항소심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진경준 전 검사장의 제3자 뇌물 혐의와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진 전 검사장의 제3자 뇌물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1심에서 무죄 판결한 삼성의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11일 최씨의 첫 항소심 공판을 열고 특검과 검찰의 항소이유를 들었다. 특검은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가 무죄로 본 삼성의 제3자 뇌물 혐의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먼저 특검 관계자는 “같은 당사자(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2015년 7월25일 단독면담)에서 승마지원,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와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출연을 합의했는데 왜 승마지원은 뇌물이고 영재센터와 재단은 뇌물이 아닌지 의문”이라며 “대통령이 단독면담에서 대기업 총수 3명에게 금품제공을 요구했는데 왜 롯데·에스케이는 제3자 뇌물이고 삼성은 제3자 뇌물이 아닌지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심이 “청탁의 부정성, 묵시적 청탁의 입증 방법, 청탁의 대상 현안과 직무의 특정 등 대법원 판례가 취하는 부정한 청탁의 판단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며 특검 쪽은 대법원 판결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진 전 검사장의 사건에서 “직무와 관련해 서용원(대한항공 부사장)으로부터 ‘향후에도 회사를 잘 도와달라’는 취지의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고 판단했고, 정옥근 전 육군참모총장 사건에서는 “구체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없다 하더라도 에스티엑스(STX)그룹의 해군함정사업과 관련한 현안 및 그와 관련한 직무, 영향력에 대해 공통된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있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사건에서도 2심은 “비리 혐의에 대해 추가 조사 요구, 징계, 형사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조치를 취하지 말고 명예롭게 퇴진해달라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의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며 제3자 뇌물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특검이 제시한 판례 중 진 전 검사장 판결이 삼성 제3자 뇌물 혐의와 비슷하다. 진 전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제2부 부장검사로 근무하면서 2010년 5월14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횡령 등 혐의 내사사건을 종결했다. 그 직후인 2010년 5월11일 진 전 검사장은 서용원 당시 부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처남 회사와 대한항공 사이의 용역계약을 요청했고, 서 부사장은 “향후에도 회사를 잘 도와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서 부사장이 한 말은 한진그룹 내사사건을 처리한 적 있고 앞으로도 범죄수사와 관련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피고인이 검사 직무 수행 과정에서 한진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처리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현안 해결 뒤 금품지원 요구’는 삼성의 제3자 뇌물 혐의 사건에서도 반복됐다. 국민연금공단은 2015년 7월10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결정했고, 7월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의결됐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담당자들에게 합병 찬성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인정한 문 전 장관의 2심은 박 전 대통령이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해 7월25일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단독면담을 갖고 승마·영재센터·재단 지원을 요구했다고 박 전 대통령 1심은 인정했다. 특검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승계작업이 남아있기 때문에 금품지원은 앞으로 있을 승계작업을 위한 대가로 볼 수 있다. 장기간 진행되는 진 전 검사장 처남의 용역계약과 함께 향후 잘 처리해달라고 한 걸 보면 이 부회장이 왜 지원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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