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있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해 숨을 거둔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의 운영 주체와 운영 방안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가 운영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행안부와 경찰, 기념사업회 쪽이 대공분실의 원형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새 건물을 짓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로 돌려달라는 청원을 냈던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민간단체들은 “역사의 흔적을 또다시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8일 경찰청과 기념사업회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경찰청 인권센터가 철수한 뒤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는 기념사업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념사업회는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민주인권기념관’(가칭)을 설립하는 제안서를 행안부에 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찰청 인권센터 터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새로 건립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교육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행안부와 논의가 상당히 진척됐다”고 밝혔다. 행안부 외청인 경찰청이 물러난 자리를 행안부 산하기관인 기념사업회가 넘겨받는 모양새다.
그러나 애초 남영동 대공분실의 민간 운영을 요구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인권기념관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이런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념사업회가 제안한 운영 방안이 남영동 대공분실의 원형을 훼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현 경찰청 인권센터 안 테니스장에 새로 건물을 올려 기념사업회 사무공간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추진위 쪽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은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추진위는 경찰이 철수한 뒤 이 장소의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지만 기념사업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기념사업회는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엔 부적절했다”며 “구체적인 운영 방안은 추진위 쪽과 더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성환 추진위 집행위원장은 “기념사업회가 공론의 장에서의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며 “기념사업회가 원형을 훼손하는 방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더 강력한 항의 표시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건물이 들어설 수도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 테니스장은 반인권적 고문이 이뤄지던 건물 바로 옆에 있다. 영화 <1987>에서도 박처원 치안감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씨가 박종철 열사의 화장 허가를 기다리며 운동을 하는 공간으로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남영동 대공분실 내 테니스장은 한쪽에서는 고문하고 한쪽에서는 테니스를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원형 그대로 보존해 후대에도 보여줘야 한다”며 “아우슈비츠 등 역사의 현장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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