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대회의실에서 근로감독관과의 대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단지 경기도 파주. 그는 LG디스플레이 하청업체에서 지게차로 자재를 운송한다. 2013년 가을 사외협력업체에 입사해 2015년 사내하청업체 삼구아이앤씨로 옮겨 일했다.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갓 넘는 수준이었지만 500% 상여금이 있어 그럭저럭 먹고살 만했다. 매년 최저임금이 조금씩이라도 오르면 기본급도 인상되고 보너스도 올랐다.
먹고사는 게 힘들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두 번밖에 나가지 못했지만 불의한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고 정권이 바뀌는 걸 보면서, “어쩌면 내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되던 날, 그와 동료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상생하겠다던 LG ‘살생’하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회사가 근로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기본급 138만원, 조업장려수당 8만9천원, 상여수당 49만원. 이를 더한 통상임금 196만원이 적혀 있었다. 상여금 400%를 12개월로 나눠 상여수당을 만든 것이었다. 남은 상여금 100%는 설과 추석에 절반씩 지급한다고 했다. 황당했다. 계산을 해봤더니 월급이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오른 물가와 세금을 따지면 오히려 임금이 깎였다. 내년 시급도 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취업규칙을 바꾸려면 과반수가 동의해야 한다는 설명 따위는 없었다. 억울했다. 반장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동료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직원들은 회사가 내민 종이 한 장에 말없이 서명했다.
정부가 최저임금신고센터를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고 고용노동청에 전화를 걸었다. 근로감독관은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전환하는 건 시급 인상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에 위법이라고 했다. 익명이 보장되니 근로감독을 청원하라고 했다. 그는 난생처음 근로감독 청원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원청은 1층에서 운행하는 100대가 넘는 지게차 중 그가 속한 부서 3대만 속력을 시속 10km에서 절반으로 낮추라고 했다. 속도를 줄이면, 쉬는 시간도 없이 늦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게차가 추월하게 돼 위험성도 높아진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얼마 후 반장은 그에게 다른 부서로 가라고 했다. 그는 부당한 인사발령이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무렵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재벌기업을 찾아갔다. 삼성, 현대자동차에 이어 LG그룹도 협력사와 상생협력을 위한 85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
며칠 뒤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직원들 반발이 심한 업체만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은 탓에 다른 하청업체들이 감독을 앞두고 부랴부랴 동의서를 받았다고 했다. 근로감독관은 돌아갔고, 바뀐 건 없었다. LG디스플레이 하청노동자 3600명은 이렇게 월급 20만원을 도둑맞았다. 상생을 하겠다던 LG는 ‘살생’을 했다. 결국 그는 4월 초 회사를 그만뒀다.
“저에 대한 보직 변경이 노동부에 진정 넣은 것의 보복 조처가 아니냐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에 더 화가 납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려는 행동에 이렇게 갑질을 하리라곤 예상 못했는데 당하고 나니 너무 화가 납니다.”
또 다른 최저임금 제보자. 직장갑질119에서 ‘최저임금 갑질’ 기업으로 언론에 공개한 회사였다. 근로감독관이 회사 쪽 사람을 만나고 돌아간 후 팩스가 여러 장 들어왔다고 했다. 직장갑질119가 고용노동부에 건넨 자료였다. 김왕 근로기준국장에게 제보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며 준 문서를 근로감독관이 고스란히 회사로 넘긴 것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근로감독 결과는 ‘서류 조작’
몇 해 전, 강원도 삼척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진정을 넣었다. 고용노동부는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뤘다. 한 조합원이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전화를 받고 차를 운전하러 갔다. 손님은 술에 취한 하청업체 임원과 근로감독관이었다. 조합원은 이 사실을 노조에 알렸고, 근로감독관이 교체됐다. 회사와 고용노동부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노동부 갑질, 아오 빡쳐. 노동부에 전화했더니 불이익 변경되고 나면 전화하라고…. 제약회사인 일성신약에서 상여금 400%를 없애고 연봉제로 전환하겠다고 해서 전형적인 최저임금 꼼수로 판단돼서 노동부에 전화했더니, ‘근로자한테 불리하다고 다 불법이 아니에요’ 이렇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맞는 말이긴 한데 최저임금신고센터라 해놓고 전혀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주지 않는 느낌. 결국 이번달 월급은 연봉제로 바뀐 임금이 나왔고, 어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서명을 받으러 왔는데, 아무도 서명을 안 하니까, 오늘 또 설명회 하고, 서명받는다 하고.”
“회사 이사랑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노동부에 제보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한테는 일이 생기면 그때 연락하라 해놓고 회사에는 제보가 왔다고 알려줬나봐요. 믿을 건 노동부밖에 없어서 연락한 건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상여금만 날아가게 생겼네요. ㅜㅜ”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gabjil119.com)에 신고한 내용이었다. “믿을 건 노동부밖에 없어서 연락한 건데”라는 말이 눈에 박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직딩’들의 마음을 모르는 모양이다.
“저희 회사에 근로감독이 왔습니다. 근로감독의 실효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회사에서 내부고발자를 찾아, (저는) 걸릴까봐 눈치 보며 숨 죽은 듯 지냈습니다. 회사에서 꼼수로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킨 내용에 근로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 (회사) 측근에 따르면 오히려 근로감독관들이 이런 이슈를 부담스러워하여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게 당사에서 각종 서류를 잘 준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대전의 한 회사 제보자가 보낸 편지였다. 상여금이나 식대, 교통비를 기본급으로 전환하거나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을 도둑질해 직장갑질119가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회사 중 이를 원상회복했다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근로감독의 결과는 ‘서류 조작’이었다.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답하라
학교에서 월급 계산하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는 나라, 노동법을 모르는 직장인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 고용노동부이다. 깡패를 만나 돈을 뺏기고 폭행을 당하면 경찰서를 찾아간다. 불이 나거나 환자가 생기면 소방서에 연락한다. 악덕 사장을 만나 월급을 떼이고 불법노동을 강요받으면 고용노동부를 찾는 게 당연하다. 만약 경찰관이 폭행사건을 몇 달 뒤에 조사한다 하고, 소방관이 며칠 뒤에 응급환자를 데리러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직장갑질119 출범 5개월, 고용노동부와 근로감독관을 성토하는 제보가 100건이 넘는다. 그중 근로감독관을 칭찬하는 편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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