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35)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세례’ 등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행위 폭로에 이어 관세 탈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조양호 회장 일가가 고가의 명품과 생활용품 등을 국외에서 구입한 뒤 정상적인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빼돌려왔다는 내용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해외 물품 밀반입 의혹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출발은 조현아(44)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있었던 2014년 12월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이 뉴욕 제이에프케이(JFK) 국제공항에서 두개의 짐을 기내에 가지고 탔고, 세개의 상자를 수하물로 부쳤지만 관세를 전혀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로 반입한 물품이 면세액 600달러를 넘지 않았다는 건 믿기 힘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접촉했던 대한항공과 공항 관계자들은 ‘대한항공이 세금을 내지 않은 채 조직적으로 총수 일가의 물품들을 들여오고 있다’며 이는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 조 회장 일가가 국외에서 쇼핑을 한 뒤 해당 지역 대한항공 지점에 물품을 건네면, 항공기로 국내에 들여온 뒤 직원들이 이를 평창동 집까지 배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 회장 가족은 관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고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한항공 관계자는 “명품이나 고액의 물건은 의무적으로 세관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총수 일가는 아예 관세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며 “비행기가 도착하면 수행직원이 오너 일가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가 법무부의 입국심사 도장도 대신 받고, 조 회장 등 가족은 다른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이 통로는 세관도 관할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대한항공 쪽은 “경영팀의 위탁수하물로 분류돼 일반 승객의 수하물과 함께 세관으로 인도됐고, 이후에 통관 절차상의 문제는 관세청의 업무로 아는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관세청 역시 “조 전 부사장의 수하물 3개가 엑스레이를 통과했고 특이사항이 없어 관세를 내지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모든 짐을 검사하게 돼 있고 면세액을 초과한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비춰 이런 해명은 믿기 힘들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물증’을 찾을 수는 없었다. 3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최근 조현민 전무의 갑질 폭로가 이어지자 다시 관련 제보가 쏟아졌다. 20일 현재 개설된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에는 500명이 넘는 직원·관계자들이 오너 일가의 횡포와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관세 탈루에 대한 제보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한겨레>와 접촉한 대한항공 내부 직원들은 조 회장 일가가 자신들이 이용할 물품을 회사 물건으로 속여 반입해 왔다고 증언했다. 이 경우 운임은 물론 관세까지도 모두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 더욱 충격적인 내용은 조 회장 일가의 물품이 정상적인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프리 패스’ 된다는 제보였다. 그 이면에는 관세청 직원과 항공사 직원 사이의 유착관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대한항공 직원은 “인천공항 지부에는 관세청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고, 그 사람이 관세 포탈이 가능하도록 물밑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언론은 대한항공이 인천공항에 총수 일가의 물품을 별도로 관리하는 5~6명 규모의 밀반입팀을 두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팀을 통해 조 회장 일가가 고가의 가구는 물론 아동복·식료품·반려동물 사료까지 다양한 물품을 들여온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사실 확인을 위해 국회의원실을 통해 조 회장 일가의 관세 부과 내역 자료 제출을 관세청에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요청한 사항은 ‘개인정보에 관한’ 것이어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구체적인 증언과 제보가 이어지자 관세청은 뒤늦게 조양호 회장 부부와 자녀 3남매의 카드 국외 결제내역과 관세 납부내역, 출입국 기록 등을 분석해 정식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관세청 조사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관세청 직원과 대한항공 직원 사이의 유착이 사실이라면 셀프조사로는 이를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일부에서는 관세 탈루에 관세청 직원들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무역 관련 업계 관계자는 “회사 직원이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면 관세청 공무원이 ‘세관 통과시켜줄 테니 쇼핑 한번 하고 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관세청 직원이 신혼여행 갔다 오면서 명품을 잔뜩 사 오고도 관세 안 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관세청의 조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정당국의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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