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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원이 제 역할 못해” ‘고문 피해’ 진술 듣고 눈물 흘린 판사

등록 2018-04-30 12:23수정 2018-05-01 15:33

재일동포 간첩조작 재심서 위증한
‘고문 수사관’에 징역 1년 구형
판사, 피해자 진술 듣고 눈물 흘리자
고문 피해자 가족 판사에 휴지 건네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인 윤정헌(왼쪽)씨와 김정사씨가 지난 2일 오후 윤씨의 재심 재판에서 “고문이 없었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고병천씨의 재판을 방청한 뒤 돌아가고 있다. 고씨는 이날 재판 중에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됐다.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인 윤정헌(왼쪽)씨와 김정사씨가 지난 2일 오후 윤씨의 재심 재판에서 “고문이 없었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고병천씨의 재판을 방청한 뒤 돌아가고 있다. 고씨는 이날 재판 중에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됐다.
“당시 피해자들의 간첩 혐의에 유죄 확정 판결을 내려 형을…. 법원에 이 사건을 심판할 수 있을 자격이랄까요. 인권 최후의 보루임에도 제 역할을 다했는가….”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서관 501호 법정, 재판석에 앉은 이성은 판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고문 가해자’ 고병천(79)씨의 위증 혐의를 다룬 이 재판에서 고문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은 뒤였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문 피해자 장의균씨의 부인인 윤혜경(63)씨가 주섬주섬 가방 속에 있던 휴지를 꺼내 법정 경위에게 건넸다. 이 판사가 윤씨가 건네준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 법원을 다시 한번 믿어주신 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믿음에 대해서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심리하고 결론 내려 보겠습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의 심리로 열린 고씨의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고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고씨는 2010년 12월16일 재일동포 조작 간첩 피해자인 윤정헌(65)씨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구타나 협박 등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해 지난해 12월13일 위증혐의로 기소됐고 재판 중 법정 구속됐다. 그는 전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수사관으로 1984년 한국에 유학 온 윤씨에게 간첩이라고 자백하라며 고문하는 등 고문 행위를 저지른 인물이다.

검사는 “피고인의 가혹행위와 고문으로 윤정헌씨와 이종수씨 등 고문 피해자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며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재심에서도 허위 진술을 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고씨의 변호인은 “(고문행위는) 그 당시 있었던 관행의 일부였다. 일개 수사관인 고씨가 국가의 대표자인양 공식적인 자리에서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변호했다.

녹색 수의와 하얀색 고무신을 신은 백발의 고씨는 최후 진술을 하기 위해 증인석에 자리했다. 고씨는 직접 작성했다는 반성문을 담담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진실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먼저 윤정헌씨에게 사죄드리고 다른 모든 분들에게 사죄를 드립니다. 재판장님, 염치없이 선처를 바랍니다.”

고씨가 ‘선처를 바란다’고 말하자 방청석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고문 피해자들은 분노와 회한이 담긴 목소리로 최후 진술에 나섰다. 고씨의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일본에서 한국을 방문한 박박(62)씨가 어렵게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재일교포 출신 유학생으로 1983년 8월 국군보안사(현 기무사)에 연행돼 고씨에게 고문을 당했다.

“저는 1983년 4월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8월 한국 보안사에 구속됐습니다. 10년 유죄판결 받고 5년 징역을 살았습니다. 결혼한 지 3개월만에 붙잡혀 제 처는 남편이라는 걸 모르고 5년을 살았습니다. 88년 8월 석방되기 일주일 전 고병천이 저를 불렀습니다. ‘일본에 가더라도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진짜…. 그런 것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저뿐만 아니라 많은 고문 피해자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피해자는 아직도 많습니다. 아직도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용서요? 용서라는 그 글자가 우리한테는 정말….”

고문 피해자 윤정헌씨도 말을 이었다. “징역 1년도 너무나 가볍습니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을 진 고문 가해자는 겨우 세 명뿐입니다. 너무나 부족합니다. 다른 수사관은 전혀 (외부로) 안 나오고 피고인만 나와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보안사 전체 대표라고 생각해 엄한 처벌 부탁드립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또 다른 고문 피해자 강종건(67)씨도 손을 들고 발언 기회를 청했다. “이 사건 자체의 본질은 고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대한 위법 행위인데 이를 다투지 못해 너무 안타깝습니다. 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고문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피해자 진술이 이어지는 내내 고씨는 재판부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피해자가 앉은 증인석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윤정헌씨의 재심 변호인이자 고씨에 대한 고소 대리인인 신윤경 변호사는 “피고인은 (고문이 자행된) 당시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형성하며 협조한 사람”이라며 “반성문도 법원에만 제출했지 피해자들은 서면으로 받은 사실이 없다. 고문 수사로 인한 훈장과 포상도 자진 반납하거나 포기한 적 없다. 실질적 반성과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고씨에 대한 선고는 다음 달 28일 오후2시에 진행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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