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주식회사 노사가 합의서를 통해 직접고용과 노조활동 보장 등에 대해 합의한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서 한 조합원이 노조 활동과 관련해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조직적 범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수사 진행 경과 등을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3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실무자로 알려진 삼성전자서비스 윤아무개 상무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내놓은 이유다. 윤 상무는 노조 대응 조직인 삼성전자서비스 총괄티에프(TF) 실무 책임자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위한 ‘그린화’(노조 탈퇴 작업)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영장 단계에서부터 사건을 ‘조직적 범죄’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 수준에서 사안을 판단하고 기각 사유를 밝힌다. 사유가 자세하면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노조 탄압과 관련해 ‘본사 차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의 기각 사유가 노조 와해의 큰 그림을 기획하고 지시한 삼성전자나 삼성그룹 ‘윗선’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에둘러 언급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조직적 범죄는 연루자들을 면밀히 수사해 윗선을 겨냥해야 하는데, 아직 실무자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조직적 범죄’라고 판단해놓고 핵심 실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해 오히려 윗선 수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법원과 검찰 양쪽에서 나왔다. 서울지역 한 검사는 “법원이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유독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고 꼬집었다. ‘삼성그룹 → 삼성전자 →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 지방지사 →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지시 관계에서, 윗선과 핵심 연결고리인 윤 상무를 압박할 수단이 느슨해지면서 다른 실무진도 줄줄이 입을 닫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영장 업무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윤 상무는 실무자이자 상당한 권한을 가진 지휘체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삼성의 ‘꼬리 자르기’ 수법이 통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숲을 봐야 한다’던 법원은 이날 윤 상무의 지시를 이행한 혐의를 받는 협력업체 전·현직 대표의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했다.
이날 검찰은 “윤 상무는 기획 폐업을 실시하는 등 ‘그린화’ 작업을 장기간 직접 수행했다. 증거가 거의 완벽한 상황에서 영장을 기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보강수사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현소은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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