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의 밤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외국인 관광객 두 명이 고풍스러운 한옥 가정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들은 대문에 기대거나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며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이들 뒤로 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 서너명이 더 있었다. 앞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떠나자, 한복을 입은 또 다른 관광객이 대문 앞에서 서서 양손으로 ‘브이’(V)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이 집 바로 옆에 ‘동네가 관광객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our village is suffering from tourists)라는 뜻의 영문 펼침막이 붙어 있었지만 관광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촌 한옥마을 등 전통 가옥 밀집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 전통 가옥 중 상당수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인데, 관광객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 지경이라는 게 주민들의 호소다. 참다못한 일부 주민들이 북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연휴가 시작된 지난 5일 ‘북촌 한옥마을 운영회’ 회원 30여명은 “북촌 주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마을 입구에서 집회를 열었다. 김혁진 운영회장은 “주민 입장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돼 4월 말부터 집회를 열게 됐다”며 “관광객을 오지 말라고 막는 게 아니라,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북촌한옥마을운영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옥마을 입구에서 집회를 열어 “북촌 주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사생활 침해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호소하고 있다. 주민들은 “일부 관광객이 집으로 함부로 들어오거나 주민들의 사진을 허락도 없이 찍어간다”고 말했다. 북촌 주민 박정희(61)씨는 “관광객들이 열어놓은 집 대문으로 들어오거나 초인종을 눌러 생활에 지장이 많다”며 “50년을 여기서 살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현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한옥의 매력에 빠져 두 달 전 이곳에 이사 왔다는 박소영(30)씨도 “날이 풀리면서 관광객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들에 대한 관리나 통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쉽다. 특히 아이들 안전이 걱정된다”고 했다.
관광객의 쓰레기 투기나 소음 등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던 문제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ㄱ씨는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밤늦게까지 큰 소리로 떠들고 쓰레기를 남의 집 앞에 두고 가는 건 부지기수”라며 “심지어 골목에 대소변을 보고 가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5일 북촌 골목 곳곳에는 일회용 음료 컵이나 아이스크림 컵 등 관광객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북촌 등 관광지 주민들의 피해 실태조사를 한 데 이어 지난 3월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듣고 있다”며 “관광객이 줄어들까 봐 관광객 통제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어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도 “한옥마을을 관광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제한하는 방법까지 포함해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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