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도가 전북 정읍의 고가 위를 지나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제공
호남고속철 건설공사 입찰 짬짜미(담합)를 주도해 13개 입찰 공구 전부에 들러리로 응찰했던 현대건설에 매겨진 300억원대의 과징금 납부명령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04억4400억원의 과징금 납부명령을 받고 소송을 낸 현대건설의 상고를 기각해 원고패소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현대건설 등 7개 대형 건설사는 2009년 6~7월 최저가낙찰 방식으로 시공사를 정하기로 돼 있던 호남고속철도 노반 신설공사 13개 공구를 입찰과 무관하게 자신들끼리 짬짜미로 분할 배정하기로 합의하고, 다른 14개 건설사까지 끌어들여 자체 추첨을 통해 낙찰예정 건설사를 미리 결정했다. 현대건설은 자체 추첨에선 공구를 배정받지 못했지만, 대신 앞으로 발주되는 최저가낙찰제 철도공사에서 수주 우선권을 받기로 합의했다. 현대건설은 그 뒤 낙찰예정 건설사들이 알려 준 가격으로 13개 공구 전부에 형식적으로 들러리 응찰을 했다.
공정위는 2014년 이들 짬짜미 행위에 대해 13개 공구 전부의 낙찰 계약금액에서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2조2652억원을 기준으로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하는 부과기준율 7%를 적용해 과징금을 매겼다.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부과기준율을 절반인 3.5%로 적용한 데 더해, 낙찰받지 못한 들러리 회사이고 경기가 악화했다는 점 등을 고려한 추가 감경을 거쳐 380억5500만원을 부과했다. 현대건설이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추가감면을 신청하자 공정위는 다시 20%를 감면해 과징금 304억4400만원을 내도록 했지만, 현대건설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원심인 서울고법은 “현대건설이 당시 담합을 주도했고 13개 공구에 전부 들러리 응찰을 한 만큼, 13개 공구 전부의 계약금액을 합해 과징금 기본 산정기준을 계산한 것은 적법하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산정 과정에도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위법은 없다”고 판단했다. 원심 재판부는 “기본과징금 산정 단계와 추가 조정 단계 등에서 들러리 응찰 건설사인 점 등을 반영하여 감경 조처를 하는 등 원고(현대건설)가 현실적으로 취득한 이득이 없다는 사정이 과징금 산정에 이미 반영됐다”며, 과징금 산정이 비례·평등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입찰담합 및 이와 유사한 행위’의 경우 계약금액이 과징금의 기본 산정기준이 되는 것은 입찰담합으로 낙찰받은 사업자뿐만 아니라 담합에 참여했으나 낙찰을 받지 못한 사업자도 마찬가지”라며 원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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