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현대자동차 회사 쪽이 사옥 앞에 이른바 ‘유령 집회’ 신고를 한 뒤 해고노동자의 집회를 방해한 행위를 방치한 서초경찰서장이 인권침해를 했다는 결론을 10일 내놨다.
인권위는 “현대차 본사 정문 앞에 회사가 먼저 집회 신고를 했다며 이후 신고된 집회를 방해하는 회사 쪽의 행위를 방치한 서초경찰서장의 행위는 헌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에 서초경찰서장에게 “집시법 개정 취지를 존중해 집회의 자유 보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직원들에 대한 인권 교육을 하라”고 권고했다.
현대자동차 대리점에서 판매직원으로 근무하다 해고된 ㄱ씨는 “알박기 집회 신고를 한 본사 쪽이 집회를 방해하는데 경찰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ㄱ씨는 지난 2015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여섯 차례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해고자 복직 촉구’ 등을 요구하는 집회 신고를 했다. 이 장소는 회사 쪽이 지난 2000년부터 365일 24시간 집회 신고를 하지만 실제로는 집회를 거의 하지 않는 ‘유령 집회’ 신고를 해둔 곳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회사 쪽이 먼저 집회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ㄱ씨의 집회가 열릴 수 있도록 조율하지 않았다. 회사 쪽은 먼저 집회 신고를 했다는 빌미로 ㄱ씨의 집회를 방해했고, ㄱ씨는 경찰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적절한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 ㄱ씨의 문제 제기로 2016년 6월 법원이 ‘집회 방해금지 가처분’을 결정한 이후에도 본사는 계속해서 ㄱ씨의 집회를 방해했다.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당사자 간 조율이 되지 않으면 선순위 집회 신고자에게 우선순위를 줄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경찰이 ㄱ씨의 집회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봤다.
지난 2016년 개정된 집시법의 취지는 후순위 집회 신고자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집회 신고가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라 방해의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경찰이 집회 신고자들에게 시간과 장소를 나누어서 개최하도록 권유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관할 경찰서가 후순위 집회에 대해 집시법상 평화적 집회·시위 보호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며 “재발방지를 위해 관행을 개선할 것과 소속 직원들에 대한 직무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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