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에 7천억원이 넘는 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가 지난달 13일 엘리엇으로부터 접수해 11일 공개한 4쪽짜리 중재의향서를 보면, 엘리엇은 손해액을 최소 6억7천만달러(7169억원)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자와 비용 등 적절한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액 산정의 구체적 근거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자 등이 더해지면 손해배상 청구액이 8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엘리엇은 중재의향서에서 ‘삼성 쪽에서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국민연금에 압력을 가해 통상의 절차를 뒤집고 삼성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합병에 반대해온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을 폈다. 2015년 7월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던 엘리엇은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불공정하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당시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아이에스에스(ISS)는 적정 합병비율을 1(제일모직) 대 0.95(삼성물산)로 평가했다. 일부에선 이를 근거로 엘리엇이 손해액을 최대 3천억원대로 계산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는데, 엘리엇은 이런 전망치의 2배 이상을 요구한 것이다.
엘리엇은 또 한국 정부가 자국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규정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내국인 대우’ 조항(11.3조),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를 규정한 ‘대우의 최소기준’ 조항(11.5조)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중재의향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상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의 전 단계로, 투자자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상대 정부를 공식 제소하기 전 중재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다. 접수 후 90일이 지나면 공식 중재를 제소할 수 있다. 법무부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의견을 수렴해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엘리엇 쪽에는 피해 주장 금액을 산정한 근거 등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