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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희귀 난치병 굴레 25년…“우리 가족도 희망 꿈꿀 수 있을까요?”

등록 2018-05-21 18:42수정 2018-06-01 18:31

2018 나눔꽃 캠페인
‘다카야스 동맥염’ 앓는 이미희씨

동맥혈관에 염증생겨 피순환 막아
발병 원인·완치 방법 몰라 “시한폭탄”
다달이 상주~서울 오가며 투병생활
22살 때 결혼 뒤 가정폭력 심해 이혼

마음의 상처 입은 큰딸 ‘PTSD’ 고통
중1 아들이 엄마 병간호·보호자 역할
“아픈 엄마 탓에 아들이 맨밥만 먹어”
수급비로 생활 빠듯…병원비부터 줄여

희귀난치성 질환인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이미희(43·가명)씨가 11일 저녁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에서 아들 승학(13·가명)이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동 앞을 지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희귀난치성 질환인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이미희(43·가명)씨가 11일 저녁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에서 아들 승학(13·가명)이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동 앞을 지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미희(43·가명)씨는 두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 엄마다. 하지만 이름도 생소한 희귀 난치병을 20년 넘게 앓고 있는 탓에 이씨가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버텨나가고 있다는 이씨를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났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이씨는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경북 상주시에서 나고 자란 이씨가 처음 서울대병원에 왔던 날은 열아홉살이었던 1993년 12월24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들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어야 했을 그날 이씨는 선물 대신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다카야스 동맥염’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네 살 무렵부터 한번 열이 나면 아스피린을 먹어야만 할 정도로 몸이 약했어요. 상주에서 입·퇴원을 반복하며 버텨왔는데 시골에선 더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서울대병원에 와서야 병명을 알게 됐어요.”

‘다카야스 동맥염’은 쉽게 말해 혈관에 염증이 생겨 혈관이 서서히 막혀가는 병이다. 대동맥과 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온 주요 동맥혈관에 만성 동맥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병이 진행될수록 몸속의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면서 피가 원활히 흐르지 못한다. 한국인 10만명마다 2~3명에게 나타나는 희귀병인데, 아직 발병 원인도 완치 방법도 확인된 게 없다. 이씨에게 다카야스 동맥염은 심장과 신장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왼쪽 심장을 지나가는 동맥 두 개 중 하나가 많이 막혔대요. 한 번씩 심장을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를 만큼 아팠는데, 이번에 입원해서야 처음 이유를 알았네요. 신장은 아예 한쪽이 발육을 못 했대요. 나머지 한쪽이 50~60% 정도로 기능하면서 버티는 중입니다.”

이씨는 언제 어떤 혈관에서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자신의 몸을 “시한폭탄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 몸 상태로는 직장을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음식을 보통 사람만큼 먹으면 금세 몸이 탱탱 부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평범한 일상도 이씨에게는 버거웠다. “학교 다니면서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참 좋아했어요. 잘하지는 못했지만 재밌었죠. 다음에 커서 번역가가 되면 어떨지 꿈꿨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희귀병을 진단받고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꿈을 펼쳐볼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돈을 벌 수 없는 이씨는 제 몸을 검사하고 치료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다카야스 동맥염은 환자마다 다양한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각자에게 필요한 검사와 치료의 종류가 다르다. 이씨의 경우 엠아르아이(MRI)와 국소 혈류를 정확히 촬영할 수 있는 ‘스펙트 촬영’ 등을 해야 했지만 비용 때문에 검사를 사실상 포기해왔다. “병원에서 검사를 권하면 본인부담금이 얼마인지부터 물었어요.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병원비가 부족했던 이씨는 “진료실에서는 ‘다음에 와서 검사 예약 잡겠다’고 말하고 나와 그냥 집으로 간 일이 부지기수”라며 울먹였다. 예약을 잡아놓고도 병원비 고지서가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기 일쑤였다. 20년 넘는 투병생활 동안 이씨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본검사인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촬영 등으로만 ‘시한폭탄’ 같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왔다.

이씨와 동행 보호자가 상주에서 서울까지 왕복하는 데 드는 교통비 10만원도 큰 부담이었다. 이씨 가족은 현재 한 달 기초생활수급비 84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이씨가 병원에 한 번 다녀오기만 해도 온 가족의 생활이 막막해진다. 한 달에 두 번 갈 병원을 한 번만 가고, 한 번 갈 것을 아예 안 가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이씨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아픈 몸을 견뎠다.

아픈 몸으론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씨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스물두 살, 상주의 작은 건설회사에서 잠시 경리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전남편과 1996년 결혼해 이듬해 예쁜 딸 다인(가명)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씨의 결혼생활은 몸과 마음에 상처만 남은 채 8년 만에 끝났다. 전남편은 고통스러운 이씨의 몸에 가정폭력이라는 상처를 보탰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술만 마시면 고함을 치고 집에 있는 물건을 다 부쉈어요. 나중엔 어린 딸에게도 손을 댔어요.” ‘그래도 애들 아빠’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결혼생활을 이어가 보려고 했지만, 둘째 아들 승학(13)이의 출산을 앞두고 ‘더는 불안 속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해 이혼을 결심했다. 두 자녀의 양육비와 위자료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이미희씨가 11일 저녁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에서 아들 승학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희귀난치성 질환인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이미희씨가 11일 저녁 서울 종로 서울대병원에서 아들 승학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씨는 올해로 스물한 살인 딸과 열세 살인 아들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이래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아빠에게 폭행을 당한 다인이의 학창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중학생 다인이의 책상에는 쓰레기가 뿌려져 있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에게 돈을 뺏기기도 했다.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다인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진단받았다. “딸을 힘들게 했던 아빠와 친구들이 모두 상주에 있어 한 번씩 못 견딜 정도로 힘들어지면 다른 지역에 있는 지인의 집에 며칠 머물다 와요. 치료도 독립도 못 돕는 형편이니….” 눈물을 훔치던 이씨는 말끝을 흐렸다.

다행히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 승학이는 이씨에게 “생각만 해도 든든한 존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 달에 한두 번 이씨와 함께 병원에 가느라 주기적으로 학교를 빠졌고, 이번 입원 기간엔 일주일 넘게 병원에 머물면서 이씨의 보호자 역할을 해냈다. 병상 아래쪽에 있는 보호자 침대는 외할머니에게 내드리고 좁은 환자 침대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청하면서도 투정 한 번 부린 적이 없다. 이씨는 그런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 “성장기라서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아픈 엄마 때문에 끼니 때 반찬 없이 맨밥만 먹어요.” 이씨는 딸 다인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해주고, 승학이에게 배부르게 고기를 먹여주는 게 소원이다.

하지만 한 달에 84만원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는 겨우 살기에도 빠듯하다. 84만원 중 임대주택의 월 임대료 15만원과 관리비 10만원을 내고, 빚 5000만원의 상환액 13만원 등 고정비를 내고 나면 30만~40만원 남짓이 손에 남는다. 이 돈으로 이씨와 두 자녀, 그리고 여든이 넘은 이씨의 친정엄마까지 네 가족이 한 달 동안 생활해야 한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먼저 제 병원비를 줄여요. 그래도 안 되면 식비를 줄이고 식비 다음은 공과금이에요. 제가 벌어야 하는데 몸이 아프다 보니 한달 한달 넘기기 급급한 거죠.”

이씨는 가족들이 처한 모진 상황을 ‘자신이 아파서 생긴 굴레’라고 했다. 자신이 난치병을 앓으면서 경제 활동을 못 해 가족의 생활이 빠듯해졌고, 돈이 없어 병원비를 줄이다 보니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지면서 온 가족이 계속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 굴레를 끊기 위해 자신이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낀다. 아니, 최소한 건강이 더 나빠져서 딸과 아들에게 짐이 되는 일만이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가 몸이 아프면서 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수급비에 의지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거죠. 우리 가족도 희망이란 걸 꿈꿔볼 수 있을까요?” ‘해주고 싶은 건 많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마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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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모금액은 1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이미희씨의 치료비와 생계비로 사용할 예정이고 1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이미희씨 가족처럼 어려운 사연의 가정에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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