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는 공장 이주보상금에 절망
옮길 곳 못찾자 유서 쓴 채 결국…
용산참사 9년 지났지만
세입자 보호법 별반 바뀐 게 없다
옮길 곳 못찾자 유서 쓴 채 결국…
용산참사 9년 지났지만
세입자 보호법 별반 바뀐 게 없다
김현식(가명) 사장이 메모지에 남긴 유서.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우리는 개미굴 같은 존재, 밟아서 문지르면 사라지는…” 뉴타운 사업으로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한 공장 세입자가 작은 보상금에 이전할 곳을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가 숨진 날은 설 연휴가 끝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2월25일이었다. 지난 13일 김 사장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부인 ㄱ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니트 기계는 여전히 한달에 30만원어치 전기를 먹으며 그날처럼 ‘윙윙’거리고 있었다. “기계를 끄질 못해요. 끄면 고장 난다고 해서….” ㄱ씨는 남편이 운영하던 공장 일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남편이 기계를 다루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집착하듯 몰입했단 사실은 안다. 김 사장이 장위동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01년 8월이다. 한대에 1억4000만원짜리 니트 기계 4대를 들였다. 이렇게 만든 니트를 근처 동대문시장에 내다 팔았다. 중간에 니트 기계를 한대 더 들였다. 김씨는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장에서 살았다. 숨진 김씨 공장 주변 이웃도
보상금 못 받고 40만원 책정
“조합이 세금 내역 없다며
보상금 안 주는 건 억울합니다” 장위4구역 세입 사업자들
정부에 보상금 재평가 신청
재개발 잔혹사 막으려면
세입자와 공생모델 찾아야
장위 4구역 재개발현장. 해당 지역 인근에 빌라 등이 이주가 마무리되어 오가는 사람이 없으며 거리에 각종 폐기물들이 쌓여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현식 사장이 숨진 서울 장위동의 한 니트 공장.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용산참사 뒤 휴업보상금 겨우 ‘한 달’ 늘었을 뿐 장위4구역 재개발 현장에는 이들처럼 조합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 구역에는 세를 들어 공장·상가 등 영업을 하는 사업자 수가 600명이 넘는다. 이 중 200여명이 조합에서 제시한 영업손실보상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서울시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을 신청했다. 조합이 제시한 영업손실보상금 규모가 작아 국가기관에 재평가를 요구하는 절차다. 장위동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5년 뉴타운 사업지로 선정됐다. 당시 장위 뉴타운 후보지는 55만3000여평으로 2만8000여가구, 8만여명이 살고 있었다. 대규모로 추진된 장위 뉴타운 사업은 15개 구역으로 나뉘어 각각 재개발이 진행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일시 중단됐다. 이후 10년 동안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6개 구역(8·9·11·12·13·15구역)의 뉴타운 지정이 해제됐고, 14구역도 해제 가능성이 크다. 한동네 이웃 같았던 장위동은 재개발 구역에 따라 조각조각 나뉜 지 오래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장위전통시장’도 사라질 위기다. 장위10구역과 11구역에 걸쳐 있는 이 시장에는 170여개의 상가가 입점해 있다. 11구역의 경우 뉴타운 지정이 철회됐지만 10구역은 지난해 7월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났다. 총 170여개 상가 가운데 100여개가 10구역 쪽에 몰려 있다. 이곳이 재개발되면 11구역 상가 60여개만 남게 된다. 시장이 제대로 유지될 리 없다. 장위전통시장에서 휴대폰 가게를 운영하는 서기원(59)씨는 “높으신 분들에게 전통시장은 개미굴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밟아서 문지르면 사라지는…”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위동 곳곳에서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지만 조합 쪽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 사장이 숨진 장위4구역 조합 관계자는 “돌아가신 분은 안타깝지만, 보상금 등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급을 한다. 감정평가사가 감정한 액수를 바탕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합 쪽이 임의로 보상금을 높이기도 어렵다.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줄어들면 배임 등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개발 반대 투쟁을 하는 신희철 노동당 성북구 당원협의회 부위원장은 “조합원 총회 등을 거쳐 승인을 받으면 세입자 등에게 현실적인 보상을 해줄 수 있다. 이 과정에는 아무런 법적 문제도 없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끝없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법 개정을 꼽는다. 9년 전 ‘용산참사’ 사건으로 재개발 지역 세입자에 대한 보상이 쟁점이 됐다. 막대한 권리금과 시설 투자비를 들여 장사하다가 적절한 보상금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던 이들이 참사로 희생됐기 때문이다. 당시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는 부모님과 함께 맥줏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권리금과 시설 투자금 등을 합쳐 3억원 이상이 들어갔지만, 조합이 제시한 보상금은 1억500만원뿐이었다. 억울해서 떠날 수 없었고, 결국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랐다. 이씨는 용산참사로 아버지를 잃고 본인도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비극 이후에도 법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영업손실보상금이 과거 3개월치 휴업에 대한 보상 기준에서 4개월치로 한달가량 늘었을 뿐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재개발 사업이 개인의 재산권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이뤄지는 것이 가장 문제다. 세입자에게 보상금을 1개월치 더 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70~80년대식 대규모 재개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덩치가 클수록 재개발의 위험 부담은 커지고, 갈등은 깊어진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재개발은 세입자나 임차 상인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세입자들은 한꺼번에 이주해야 해서 마땅히 살 곳을 찾기도 어렵고, 주민들이 떠나는 지역이라 장사도 안 된다. 작은 단위로 재개발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도시생태계에도 좋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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