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처음부터 끝까지 ‘홍대 몰카범 수사’는 달랐다
여성 피해사건 수사 과정과 확연한 차이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것’
여성 피해사건 수사 과정과 확연한 차이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것’
지난 5월1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근처에서 1만2천여 명의 여성이 모인 가운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연합뉴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였네!”
지난 5월1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나온 여성 참가자가 손에 든 붉은 손팻말에 쓰인 문구는 수사기관을 향해 조롱하듯 따져묻고 있었다. 남성이 피해자인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불법촬영) 사건’ 수사에선 사건 발생 12일 만에 범인을 검거할 정도로 유능한 경찰이, 그동안 여성 피해자 사건 수사에선 왜 그토록 무능했느냐고. 여성이라는 단일 주제로 역대 최대 규모 집회를 이끌어낸 참가자 1만2천여 명도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인권”을 촉구하며 “남피해자 쾌속수사 여피해자 수사거부” “편파수사 부당하다 남자들도 처벌하라”는 규탄 구호를 목이 찢어지도록, 절규처럼 쏟아냈다. 닷새 전인 5월14일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를 늦추거나 빨리하거나 공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분노한 여성들에겐 해명이 되지 않았던 셈이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 여성의 신고 접수와 피해 영상 삭제 등을 돕는 인권단체인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300여 건의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했다. 지난해 5~12월 상담한 206건을 집계해보니, 여성 피해자(여성 93.7%, 남녀 공동 3%, 남성 3.3%)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5월23일 <한겨레21>을 만난 한서성 서랑 대표와 효린 상담팀장은 홍대 사건에서 경찰이 보여준 적극적인 수사 태도는 전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서성은 “홍대 사건 수사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이번 수사에서 한 조처는 그동안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던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분노했다”며 홍대 수사와 기존 여성 피해자 사례를 비교해 설명했다. ‘피해자 특정’을 경계하는 한사성 방침에 따라 사건과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사건을 재구성했다.
사이버 성폭력 수사도 ‘복불복’이다. 의지와 능력이 있는 수사팀을 만나 운 좋게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다만 더 많은 여성 피해자들이 사건 접수 때부터 사실상 ‘수사 거부’로 오해할 만한 경험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홍대 사건, 수사 시작부터 달랐다.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사건의 특성상 ‘관할 지역’이 따로 없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면 관할을 핑계로 사건 접수를 떠넘기는 일이 벌어진다. “가해자 주거지 경찰서로 가라”거나 “몰카가 찍힌 모텔 관할 경찰서로 가라”는 식이다. “증거물이 흑백이면 안 되니 컬러로 뽑아오라”거나 “양면은 안 되니 단면으로 다시 출력해 오라”고 돌려보내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벌어진다. 대부분 피해자는 학교에서 형사소송법을 배운 적도,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적도 없다. 주눅 든 상태에서 경찰이 “가라”면 가고, 그렇게 ‘뺑뺑이’를 돌다가 신고 의지마저 꺾인다.
다른 경찰서로 사건을 미루는 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아예 “신고해봐야 범인을 못 잡는다”거나 “무고로 고소당할 수 있다”며 신고를 말리기도 한다. “영상 속 여성 다리에는 점이 안 보이는데 당신 다리에는 점이 많지 않느냐,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당신을 역고소할 수 있다”고 신고를 반려한 적도 있다.
피해자들이 사건 접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최악의 경험은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과 ‘책임 전가’다. 채팅을 하면서 찍힌 촬영물로 피해를 본 여학생은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다가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혼이 났다. 용기를 내 야간자율학습까지 빠지고 갔다가 되레 경찰한테 2차 피해를 당한 셈이다. 외도 과정에서 영상이 찍힌 여성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며 훈계를 듣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 대신 ‘내가 왜 그런 사람(가해자)을 만났을까’ ‘내가 바보’라는 자기환멸과 죄책감을 갖게 된다. 신고할 생각이 사라지고, ‘영상이라도 삭제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사성을 찾는다. 수사 담당자가 보여준 귀찮아하는 태도와 눈빛과 말투, 그 모든 것이 피해자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그 수련회 ‘몰카범’은 왜 잡지 못했을까
지난 5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김포여성상담센터가 ‘성폭력처벌법 제14조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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