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축산면 일대 어민의 대게잡이 모습.
[기자가뛰어든대게잡이] “뉘들이 대게맛을 알아?”
[현장] 새벽 3시 대경호 타고 출항…200마리 대게 싣고 귀항하기까지 본격 ‘대게’의 철이다. 대게 원조마을이 있는 영덕군 축산면 일대 어민들의 대게잡이도 1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산업법에는 영덕대게는 11월 1일부터 잡을 수 있지만 축산면을 중심으로 한 영덕군 일대 어민들은 대게가 더 자라도록 11월 한달 동안 조업을 자진 연기했다. 다시 시작된 영덕대게잡이는 내년 5월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수입산이 아닌 진짜 영덕대게 맛을 즐길 수 있다. 전국 맛사냥꾼들의 군침을 흘리게하는 영덕의 명물 ‘대게’ 잡이 뱃길에 <한겨레> 사회부 박영률 기자가 따라 나섰다. 영덕대게 잡이 배를 타다…하루종일 ‘바이킹’탄 뱃사람 2일 아침 새벽 3시. 아직도 바다는 캄캄한 어둠에 잠겨 있다. 출항준비를 마친 6.38t급 연안 대게잡이 목선 대경호는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부두를 떠나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망망대해로 나선다. 대게는 날씨가 따뜻하면 죽는데다, 바람이 어떻게 바뀔 지 몰라 가능한 한 이른 새벽에 출항을 한다. 대경호의 속도는 시속 13노트, 그리 거친 물살이 아닌 데도 배가 앞뒤 좌우로 흔들리면서 요동친다. 지난밤 늦게까지 잠을 설친 탓인지 벌써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불편하다. 뱃사람들은 하루종일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는 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배가 속력을 내니 이물(뱃머리) 쪽 상갑판으로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선원 김호대(46)씨가 조타실 뒤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조타실은 한 사람이 겨우 키를 잡을 공간밖에 없어 조타실 뒤쪽 갑판에 김씨와 함께 쪼그리고 앉았다. 등산복을 껴입었지만 그 틈새로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왔다. 칼바람과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면서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다. 초겨울에도 이런데 본격적인 게철이 시작되는 한 겨울에는 작업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다로 나선 지 50여분쯤 지나자 부표의 위치가 위성항법장치(GPS)에 나타난다. 항구에서 20㎞ 거리다. 드디어 대게 어장에 도착한 것이다. 농민들이 밭에 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듯이 어민들은 그물을 엮어 바다 깊숙이 던져준다. 그물의 밑부분에 무거운 추를 달아 바닷속에 달고, 스트로폼 부표를 띄워 표시를 해둔다. 선장 김호국(48)씨는 “바다는 겉보기에는 평평해 보이지만 바닷 속 바닥은 육지처럼 산과 계곡이 있다”며 “이 지형을 잘파악해 어떤 지형에 그물을 내리느냐가 대게잡이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대게 원조마을이 있는 차유마을(경정2리) 부근의 경정3리 출신이다. 14살 때부터 대게잡이 배를 탔지만 뱃일이 너무 힘들어 군에서 제대한 1979년부터는 사우디에 노동자로 가려고 벽돌쌓기를 배웠다. 기술을 다 배우고 나니 중동 특수가 사라져, 사우디에는 못가고 국내 건설현장을 떠돌았다. 부산에서 건설 현장 반장으로 일하다 외환위기 이후 일거리가 줄어들어 1998년 귀향해 정착했다. 2002년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목발을 짚고 갑판 위에서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뱃일을 했다고 한다. 요즘 영덕에는 김씨처럼 귀향하는 젊은 어민들이 늘고 있다. 벽돌쌓기 기술 배우니 ‘중동경기’ 끝
최근 영덕에 젊은 어민들 늘어나
대경호 김호국 선장이 수확한 대게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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