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미주 한인사회 지도자로 활약한 이대위(1878~1928·데이비드 리·사진)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평안도 강서 출신인 선생은 평양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뒤 안창호 선생의 영향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해 캘리포니아대학과 성안젤모신학대학을 거쳐 목사가 됐다.
1910년대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에 맞서 미주동포사회에서 애국동맹단을 결성하자 선생은 5인 위원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황제에게 보내는 전보를 비롯한 각종 선언서와 결의문을 번역했다. 선생은 1918년 말 대한독립선언서에 안창호, 박용만, 이승만 등과 함께 미주지역 대표로 서명했고, 1919년 3월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신문인 <신한민보>의 주필로서 국내 상황을 미주 동포들에게 알리고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같은 해 임시정부에서 대미외교업무 수행을 위해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했다.
선생은 1928년 6월 17일 샌프란시스코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강성만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