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기자회견’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열려, 법학교수, 법학자,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규탄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휴일근로수당의 중복할증 사건’의 판단을 수년째 미룬 것도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사례로 든 문건이 추가로 공개됐다. 행정처는 KTX 비정규직 노동자 사건 외에도 사회적 논란이 됐던 밀양 송전탑 사건, 제주 강정 해군기지 사건,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직형태 변경 등의 대법 판결을 박 전 대통령의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로 제시한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5일 공개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 문건을 보면, 지난달 25일 조사보고서에 언급된 재판 외에 추가로 검토한 대법 심리·재판이 언급된다. 특히 2011년에 접수돼 무려 7년째 선고를 미루고 있는 휴일근로수당 중복할증 사건에 대해 “주 40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로 시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중복 할증하여야 한다는 것이 하급심 판결의 대체적인 입장”이라면서도 “그럼에도 ① 중복할증 시 기업의 막대한 추가 부담을 고려하고 ② 노사정위 노동개혁 결과 도출시까지 판결 선고를 잠정 보류하고 있음”이라고 적혀있다. 이 문건 양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오찬(2015년 8월6일)을 앞두고 2015년 7월27일 역시 정다주 당시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이 임종헌 기조실장의 지시를 받아 작성해 보고했다.
휴일근로 중복할증 사건은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기 때문에 휴일근로수당을 통상임금의 2배로 지급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뜻한다. 당시 휴일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만 지급됐기 때문에 법원이 중복할증을 인정하면 지난 3년간 못 받은 0.5배의 임금과 이자를 회사에 청구할 수 있다. 중복할증이 인정되면 수당뿐 아니라 노동시간도 당시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줄어들 수 있어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 취임 뒤 대법원에 접수된 이 사건은 2015년 9월 전원합의체로 회부됐으나, 퇴임 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 문제는 김명수 대법원장으로 교체 뒤 지난 1월 처음으로 공개변론을 열었으나 그사이 근로기준법이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돼 대법이 어떤 판결을 내어놓든 의미가 퇴색됐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쟁이 됐던 사건에서 행정처는 박근혜 정부의 편을 들었다는 식으로 문건에서 언급했다. “송전선로 공사는 공익사업이고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할 경우 변전소의 과부하와 전력수급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창원지법 밀양지원의 2013년 10월 결정도 ‘협력사례’로 제시됐다. 문건에는 “고압송전선 및 송전탑 위치 문제를 두고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 사이에 대립과 농성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던 상황→한전의 주민들에 대한 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 주민들의 공사중지 가처분 기각결정으로 갈등의 확산 방지와 분쟁 종식에 기여”한다고 평가돼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립을 둘러싼 정부와 주민 갈등 관련 소송에서도 2012년 7월 대법 판결을 통해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정부의 국방·군사시설 사업 실시 계획 승인 처분이 법률적으로 유효함을 선언”했다고 적었다.
당시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던 ‘노동조합 조직형태 변경’ 사건도 “유효 여부에 따라 향후 노동조합의 운영방식 전반에 큰 파급력 예상’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6년 2월 대법관 8대5의 의견으로 회사에 관계없이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이 단체교섭권·단체협약권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회사가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을 회유·압박해 탈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산별노조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비판을 받은 판결이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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