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대한항공이 10년차 미만 조종사가 퇴사하면 억대의 교육훈련비 상환을 요구하는 ‘노예 계약’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정작 회사는 조종사에게 쓴 교육훈련비 가운데 수십억원을 정부에서 지원받아 온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계약을 맺은 조종사에 대한 ‘갑질 계약’을 넘어 국고 지원을 통한 부당이득까지 챙겨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가 5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부터 지난달 20일까지 고용부와 공단에서 ‘사업주 직업능력개발 훈련비용 지원금’으로 총 48억1441만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종사들은 입사 직후부터 다양한 비행훈련을 받게 되는데, 훈련마다 공단이 30만~170만원씩 지원해 온 것이다. 고용노동부 고시 등을 기준으로 대한항공은 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으로 전체 교육훈련비 가운데 4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지원받은 교육훈련비 총액이 최근 10년간 48억여원에 이른다는 뜻이다.
문제는 대한항공이 이렇게 지원받은 교육훈련비마저 퇴직 조종사에게 청구해 왔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10년차 미만 조종사가 퇴사하면 억대의 교육훈련비를 반환하라고 요구하는데(<한겨레> 2017년 4월25일치 10면), 정부에서 교육훈련비 지원을 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훈련비를 중복해 챙기는 셈이다.
대한항공과 교육훈련비 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는 전직 대한항공 조종사 ㄱ씨는 “대한항공이 청구한 훈련비 2억여원 중 일부가 국고에서 지원된 사실을 최근에야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에서 확인했다. 대한항공 쪽은 청구금액에서 국고 지원금을 제외하지 않았는데 이는 명백한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법원도 대한항공의 이런 교육훈련비 이중 수령은 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서울남부지법 전서영 판사는 지난 2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은 부분은 대한항공이 이미 회수한 비용이므로 조종사에게 다시 상환받는다면 근로기준법 제20조를 위반하여 대한항공의 부당이득이 될 수 있다”며 “조종사가 상환해야 할 훈련비 중 공단 지원 부분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 대한항공은 퇴직 조종사들에게 교육훈련비 전액을 청구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공단에서 받은 지원금은 사업주들이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를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받아야 마땅한 돈”이라며 “이는 조종사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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