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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북한산 자락 광복군 17인 묘역, 등산객 쓰레기만 뒹굴어

등록 2018-06-07 17:22수정 2018-06-08 13:45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곳곳에 방치된 독립운동가 묘역

무너진 담벼락·잡초 무성한 묘역
조국독립 위해 헌신한 이들이지만
국가 차원 예우 찾을 수 없어

독립유공자 묘역 절반 이상 소재 확인 안돼
전문가들 “실패한 ‘친일 청산’ 탓…
국가가 나서 묘역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여운형 선생 묘역 앞에서 묘역관리를 하고 있는 유지현씨가 무너진 담벼락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여운형 선생 묘역 앞에서 묘역관리를 하고 있는 유지현씨가 무너진 담벼락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묘역은 고립된 ‘섬’이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탓에 집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고, 묘역 앞에 놓인 출입문은 불법 주차된 차들로 가로막힌 상태였다. 모로 서서 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그제야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라고 한자로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정문 기둥 한쪽은 무너져 있었고,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나 홀로 이곳을 관리하기가 벅차. 이렇게 문을 잠가두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야.” 지난 5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여운형 선생 묘역 앞에서 유지현(81)씨가 출입문을 힘겹게 열며 말했다. 묘역 서쪽 아래에서는 유씨가 키우는 개가 낯선 이의 방문에 ‘으르렁’ 거렸다. “묘역에 들어와 술 마시고 난동 피우는 사람, 아무 곳에서나 대소변을 보는 사람,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사람, 아주 골치가 아파. 심지어 농약 마시고 이곳에서 자살한 사람도 둘이나 있었지.”

유씨는 21살 때부터 몽양의 묘역을 관리해왔다고 했다. 몽양 기념사업회의 전신인 추모사업회가 1991년 창립되기 훨씬 전부터다. “선친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서 했을 뿐”이라고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 세월이 벌써 60년이다. 몽양은 1947년 7월19일 극우파 암살범이 쏜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당시 현역 군인이던 안두희에 암살되기 2년 전의 일이다. 유씨의 부친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년동안 몽양의 묘역을 관리했고, 유씨는 그런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1958년부터 줄곧 이곳을 돌보고 있다. 오는 7월, 이곳에선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몽양 71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몽양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다. 일제 치하 조국 독립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 건설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간 몽양은 해방정국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지향한 이승만과 달리 좌우합작과 남북연합을 추진한 중도좌파 지도자로 손꼽힌다. 그는 해방 직후, 우파 성향의 선구회란 단체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가장 뛰어난 지도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33%의 표를 얻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당시 조사에서 이승만이 2위(21%), 3위가 백범 김구(18%)였다.

묘역과 함께 늙어 간 유씨의 지난 세월에는 고통의 기억이 뿌리 깊이 남아있다. 이승만은 정권을 잡은 뒤 몽양을 ‘빨갱이’로 몰았고 이후 역사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오랜 시간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어. ‘공산주의자 묘를 관리한다’며 사람들이 나를 ‘빨갱이’라 부르더라고.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지.”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여운형 선생 묘역. 불법 주차된 차들로 묘역 출입문이 막혀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여운형 선생 묘역. 불법 주차된 차들로 묘역 출입문이 막혀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변화가 생긴 것은 노무현 정부 때 몽양의 명예가 회복되면서부터다.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2008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됐다. 대한민국장은 건국훈장 가운데 최고등급이다. 하지만 몽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가 이뤄지거나, 묘역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한 것은 아니다. 묘역을 돌보는 일은 여전히 유씨와 기념사업회의 몫이다. “내 나이가 여든하나야. 묘역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내가 적어도 낮 시간대 만이라도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지.” 그는 말했다. 유씨가 묘역 출입문을 잠가 놓고, 묘역 아래에 개를 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애국선열의 묘역이 국가의 무관심 속에 곳곳에 방치돼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의 묘역이 마련돼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처럼 다수의 독립운동가 묘역이 국가 관리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유씨처럼 뜻있는 이들이나, 유족, 기념사업회가 독립운동가의 묘역을 돌보면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운형 선생 묘역에서 4㎞가량 떨어진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애국지사 묘소가 대표적이다.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국립 4·19민주묘지로 이어지는 구천계곡 인근을 중심으로 이준 열사를 비롯해 신익희, 손병희 선생 등 16곳의 독립운동가 무덤이 산재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애국선열 17인의 합동묘소도 이곳에 마련돼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이준 열사, 신익희, 김창숙, 이시영 선생 묘역과 손병희, 여운형 선생 묘역 등 6곳은 2012~2013년에서야 뒤늦게나마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묘역은 황폐한 모습이었다. 이준 열사 묘역 등 대부분의 묘역에는 웃자란 잡초가 가득했고, 봉분 곳곳이 파여 있었다. 광복군 17인의 합동묘소에는 등산객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와 검은색 비닐봉지, 종이 박스가 나뒹굴었다. 계곡을 따라 들어선 음식점에서는 술과 닭백숙, 닭볶음탕, 영양탕, 골뱅이무침, 해물파전, 도토리묵 등을 팔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틀어놓은 대중가요가 묘역에 이르는 길에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묘소는 한 공간에 모여 있지 않고 산자락 곳곳에 분산돼 있어, 산을 오르내리며 묘역을 일일이 참배하기도 쉽지 않았다. 주택가에 자리한 손병희 선생 묘역 역시. 출입문이 굳게 잠긴 채로 잡초가 무성했다.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이준 열사 묘역에 잡초가 자라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7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이준 열사 묘역에 잡초가 자라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해서 국가 차원의 예우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해당 묘역들은 법적으로 관리단체가 지정돼 있지 않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관리 주체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족이나 기념사업회가 묘역을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북구 관계자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고 국가가 묘역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경우, 묘역 보수·정비 예산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게 된 정도”라고 말했다.

중랑구와 경기 구리시에 걸쳐있는 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용운, 방정환, 오세창, 문일평 등 독립운동가들의 묘역 역시 유족이나 기념사업회가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묻힌 묘역의 원형은 일제가 조성한 망우리 공동묘지다. 이곳에는 조선총독부 산림과장을 지내며 산림 수탈에 앞장선 사이토 오토사쿠와 산림과 기사였던 아사키와 다쿠미도 함께 묻혀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경우 조선의 문화예술 보존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한편에서는 받고 있지만, 그런 평가를 떠나 항일운동에 앞장선 애국열사들이 총독부 인사와 나란히 누워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해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의 묘소 절반 이상이 현재 소재를 알 수 없거나, 실태 파악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산재묘소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4월말 기준으로 정부 조사로 ‘확인된 독립유공자 묘소’는 2460개(국외 묘소 포함)다. 산재묘소는 국립묘지 밖의 무덤을 말한다. 지난해 말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 인원은 1만4830명이다. 생존자(64명)를 고려하면 사망한 독립유공자는 1만4766명인데, 이 가운데 3895명이 국립묘지에 묻혀있고, 2460명이 국립묘지 밖(산재묘소)에 묻혀있다. 사망한 독립유공자의 57%(8411명)의 묘역이 소재불명이거나 미확인 묘역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공적 자료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묘소 확인과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란 진단이 나온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권력층과 기득권층은 친일파와 일제 협력자들이었다.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선열들은 오히려 변방으로 밀려났고, 국민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또 “독립운동가들은 항일 투쟁을 하면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후손이 끊어진 경우가 많다. 독립운동가 묘역 중에 소재불명이나 미확인 묘역이 다수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들이 묻혀 있는 곳만큼은 국가가 나서서 묘역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건국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독립운동가의 묘역을 사적관리의 영역으로 둘 게 아니라, 국가보훈처가 나서 국립묘지 밖에 묻힌 독립운동가 묘역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한 곳으로 모아, 그곳을 대한민국 독립의 상징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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