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호 선장 김호국씨가 이날 잡은 영덕대게를 들어보이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현장] 다리마다 살이 꽉꽉 “기다린 보람 있네” 스스로 한달 늦춰 조업 개시
2일 새벽 3시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부두. 아직 캄캄한 어둠에 잠겨있는 바다로 대경호가 출항했다. 시속 13노트로 바다를 헤쳐간 지 50분이 지나자 위성항법장치(GPS)에 부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영덕 대게’ 어장이 시작된 것이다.
선원들은 갈고리로 부표를 건지고 그물을 감아올리기 시작한다. 10여분을 감자 밧줄 끝에 달린 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속 200m에 친 길이 1천m짜리 그물이다. 이제 그물 사이사이로 대나무처럼 긴 발을 꿈틀거리는 대게들이 끝없이 달려 올라온다. 요즘 한창 살이 오른 대게를 그물에서 떼어내 바구니에 담는다. 행여 게를 떼어내다가 살이 가득찬 게 다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엔진을 멈추고 작업하느라 물결에 따라 배가 하도 출렁거리는 탓에 기자는 속이 뒤집히고 울렁거리지만, 선원들은 끄덕없이 잰 손놀림으로 솜씨좋게 게를 떼어낸다.
반나절 쯤 지났을까, 김호국(48) 선장이 날씨가 안좋아 회항한다고 알렸다. 포항이나 강구쪽 10t 이상 큰 배들은 보통 4~5일씩 대게를 잡지만, 축산항 쪽 4∼9t짜리 연안 어선들은 대부분 당일치기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돌아가는 편이다. 이날 수확은 200여마리. 몸통 지름이 9㎝가 안되는 어린 녀석들을 바다로 돌려보낸 뒤 부표와 그물을 다시 설치하고 뱃머리를 돌렸다.
항구로 돌아오자 트럭이 대게를 기다리고 있다. 게들을 모두 실어 보낸 뒤, 선장 김씨의 부인이 갓잡은 대게를 삶아 쟁반에 내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붉은 다리를 가위로 잘라 한입 베어물자, 절로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너희가 대게 맛을 알아?”
1일부터 대게 원조마을로 불리는 영덕군 축산면 일대 어민들은 일제히 대게잡이를 시작했다. 수산업법에는 영덕대게는 11월1일부터 잡을 수 있지만, 영덕군 일대 어민들은 대게가 더 자라도록 조업을 자진 연기하며 한 달을 더 기다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영덕 대게잡이는 내년 5월까지 이어진다. 겨울 별미를 기다려온 관광객들로 영덕과 축산항은 지난 주말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12월 중순부터는 살이 꽉찬 대게가 본격 출하된다.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의 연안 앞바다 수심 200m∼800m 모래뻘에서 주로 사는 대게는 다리 모양이 대나무를 닮아 대게란 이름이 붙었다. 영덕군청과 수협에서 영덕 연근해에서 잡은 모든 대게에 꼬리표를 달아 수입산과 구별하고 있다. 살이 꽉찬 ‘박달게’를 최고로 치는데, 1㎏에 10만~15만원까지 나간다. 중등품은 4만~6만원, 살이 덜 찬 ‘물게’는 작은 것의 경우 1마리에 8천~9천원선이다. 선주 직영 식당에서는 더 싸게 팔며, 영덕군청 해양수산과(054-730-6291)에 문의하면 어민 직송 택배로 게를 살 수 있다.
영덕/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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