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잔고 등 자산이 부족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외국인의 귀화를 허가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6부(재판장 이성용)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ㄱ씨 등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귀화 신청 불허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ㄱ씨는 2000년 한국에 온 뒤 자녀를 낳았는데, 2008년 난민법에 따라 인도적 체류허가를 인정받고 6년 뒤 자녀와 함께 귀화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생계유지 능력이 부족하다며 2017년 3월 귀화 허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ㄱ씨가 귀화를 신청했을 당시 국적법 시행규칙은 ‘본인 또는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이 생계유지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 중 하나로 ‘3000만원 이상의 예금잔고 증명’을 요구했는데, ㄱ씨의 은행 잔고가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먼저 “자산이 부족하더라도 오랜 기간 꾸준히 소득활동을 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소득을 창출해왔고 기술, 능력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국적 취득 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을 창출할 능력이 인정된다면 생계유지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ㄱ씨가 “(자녀를) 출산, 양육하면서 소득에 기초해 생계를 유지해왔고, 2008년 이후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번역, 통역 업무를 수행하거나 다문화 강사 등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앞으로도 고용을 보장받을 정도의 기술·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인도적 체류허가는 1년마다 허가 여부를 갱신해야 해 1년 이상의 고용관계를 요하는 직장에 취업해 능력에 맞는 소득을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ㄱ씨가 “국적을 취득해 취업이 자유로워진다면 학원과 같은 영리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해 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에 10년 넘게 거주하며 출산까지 했던 ㄱ씨의 귀화를 가로막았던 국적법 시행규칙은 더 엄격해진 상태다. 2015년 11월 법무부는 시행규칙을 개정해 생계유지 능력 증명 기준이었던 ‘3000만원’ 이상의 금융재산을 ‘6000만원’으로 2배 늘렸다. 그러나 이 판결이 확정되면 생계유지 능력은 예금 등 서류뿐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적 생활력까지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