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노동조합 와해 공작’의 실무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의 구속영장이 거듭 기각되면서 검찰의 ‘윗선’ 규명에 제동이 걸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노조 와해 공작의 조직적 성격을 외면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박 전 대표가 받는 혐의와 관련해 “범죄 사실의 많은 부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최근 조직적 증거인멸 행위에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 증거인멸 가능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지난달 15일 구속된 최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를 제외하고 회사 쪽 인사들의 구속영장을 모두 9차례나 기각했다. 특히 이번 박 전 대표의 영장 기각으로 검찰은 ‘삼성그룹 → 삼성전자 →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 서비스센터’로 이어지는 지시 관계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의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노조 와해 공작’의 조직적 성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노조가 설립된 2013년 7월부터 대표로 있으면서 ‘그린화 작업’(노조 와해 공작)을 지시한 당사자로 알려졌는데, 그의 지시를 받은 최아무개 전무의 구속에 비춰보면 적용된 잣대가 다른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 판사는 “삼성그룹은 수십년간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왔는데, 법원 판단으로만 보면 ‘노조 와해 공작’이 자회사 전무의 총지휘 아래 이뤄졌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팀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도 “법원이 박 전 대표가 ‘전직’이라서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해 입막음에 나설 우려가 적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수사 개시 직후 말맞추기 및 휴대폰 교체 등 실제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짙다”고 말했다.
검찰도 일단 숨을 고르며 내부 정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 관련해 검찰은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반발했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입장자료를 내지 않았다.
현소은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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