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법원행정처가 ‘사법 농단’ 의혹 규명을 위해 검찰이 요청한 자료 대부분을 ‘제출 거부’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과거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한 바 있는 법원이 이번엔 ‘내부 지침’을 근거로 ‘안방 지키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지난 19일 법원행정처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함께, 과거 법관 인사 기록 등을 요청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 주요 보직 인사 자료와 이른바 ‘요주의 판사’의 해외연수 선발 현황,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작성한 재판 자료 등도 요구했다고 한다. 특정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이 있었는지, 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이 실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을 통해 심리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교차 확인’하기 위해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검찰은 특히 재판 업무와 관련 없는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사건의 쟁점 등을 검토한 문건을 작성하고 이 문건이 일부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1주일간의 ‘장고’ 끝에 지난 26일 해당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법원행정처는 인사 자료는 “공무상 비밀에 해당”해 제출할 수 없고, 원세훈 사건 관련 재판연구관들의 보고서는 보안을 위한 비공개 내부 지침인 ‘유의 사항’을 근거로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 대신 ‘임의제출’ 요청을 택한 검찰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때 법원은 ‘최고 국가기밀’이 모여 있는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도 내준 바 있다. 서지현 검사에 대한 인사보복 혐의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수사할 때는 검찰 인사의 핵심 부서인 법무부 검찰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했다.
한편 법원행정처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디가우싱(강력한 자성을 통한 파일 영구 삭제)에 사용된 장비는 2014년 12월부터 대법원에서 사용됐다고 밝혔다. 생산업체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가정보원 보안적합성 검증을 받은 이 기계는 13초 안에 하드디스크 정보 완전 삭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 삭제 근거를 남기기 위해 저장매체 이미지와 일련번호 등 삭제 이력을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통상 대법원에서는 사용 연한(5~6년)이 지난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싱하는데, 대법관·대법원장의 경우 판결 합의 과정 등 민감한 파일이 있어 사용 연한과 관계없이 퇴임 뒤 디가우싱한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설명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는 국정감사 등 일정을 고려해 퇴임(2017년 9월22일) 한달 뒤인 지난해 10월31일,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는 퇴임 당일(2017년 6월1일) 디가우싱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행정처는 “퇴임 시 해당 대법원장실과 대법관실에서 직접 처리를 지시하기 때문에 폐기 여부 결정에 대한 행정처 내 별도 결재 절차는 없다”고 덧붙였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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