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5일 위원회 심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5일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출산율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2040세대 삶의 질’ 개선으로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 주된 특징이다. 출생아 수 급감은 장시간 노동 및 고용·주거 불안, 젠더 불평등에서 비롯한다는 진단에 따른 변화다. 반면 이번 정부 대책의 구체적 내용은 지난 10여년간 나온 출산·양육 지원 정책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확정한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혼부부와 청년층 대상 주거지원 확대 정책이다. 지난해 국내 혼인 가구가 연간 26만쌍으로 줄어든 가운데 2022년까지 5년간 최대 88만쌍에게 공공주택·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지원 규모와 내용 면에서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택이 공급된다고 해도 자산이 적은 신혼부부·청년들이 양호한 위치의 주택에 입주하기 위해선 상당한 빚을 부담해야한다. 공급 위주인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서울·수도권 집값 안정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산휴가급여 사각지대’ 해소 대책도 새로 나왔다. 이에 따라 고용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나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 자영업자 등도 매달 50만원씩 3개월간 출산지원금을 받게 된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노동자만 육아휴직이나 출산전후휴가 때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비정규직 고용보험 가입률은 2017년 6월 기준 68.7%에 그쳤다. 1살 미만 아동에 대한 외래 진료비 본인부담분은 현재 21~42%에서 5~20%로 줄어든다.
정부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 활성화를 위해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을 현재 5일(3일 유급, 2일 무급)에서 유급 10일로 늘리기로 했다.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두번째로 사용한 사람의 육아휴직 첫 3개월 급여를 지원하는 일명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 지원 상한액도 현재 월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확대한다. 그러나 2017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이들은 9만123명에 그친다. 이 제도를 활용하고 싶어도 활용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이야기다.
육아휴직 대신 노동시간을 줄여 일을 지속하면서 임금 감소분 일부를 고용보험에서 지원받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개편해 육아휴직 기간과 합쳐 최대 2년 동안 하루 1~5시간(주 5~25시간)씩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하루 1시간씩 노동시간을 줄일 경우, 매달 받는 통상임금 100% (상한액 200만원)를 지급한다.
지난 5월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거 커플의 출산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 대책을 보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부부도 난임 시술을 받을 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1인·동거·한부모 가구 등 크게 늘고 있는 다양한 가족의 권리를 법적으로 어떻게 보장할지 구체적인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2014년 기준으로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난 출생아 비율인 비혼출산율은 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9.9%에 견줘 크게 낮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상희 부위원장이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연합뉴스
이창준 저출산고령사회위 기획조정관은 “올해 예산에 견줘 약 9천억원의 재정(주거대책 제외)을 추가 투입하고 법 개정을 거쳐 내년부터 이번 대책을 시행할 예정”이라며 “출생아 수 감소 속도가 너무 빨라 이 속도를 완화하는 단기 대책에 중점을 두었다. 근본적인 정책 방향은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진)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 재구조화 과정에 반영해 올해 10월 수정 사항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지난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출생아 수(35만8천명)가 올해는 32만명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을 두고 내부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위원은 “패러다임만 바뀌고, 구체적 대책은 변하지 않았다. 각 정부 부처가 그동안 해왔던 걸 위원회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보니, 새로운 관점이나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다른 위원은 “인구문제에 대한 진단이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유연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위원회 구성은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짚었다.
박현정 최종훈 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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