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죄는 애초 친고죄였다. (형법 제306조) 친고죄는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 재판에 넘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피해사실 공개를 망설이다 가해자를 제때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처벌을 가볍게 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친고죄의 고소기간은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로 정해져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 기간이 짧다 보니 피해자가 망설이다 고소기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성폭력범죄 중 친고죄의 고소기간을 ‘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1년’이라고 따로 특례규정을 뒀다.
친고죄를 둘러싼 이런 논란과 법 조항의 충돌 때문에 2013년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이 함께 개정됐다. 2013년 6월19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법은 친고죄를 규정한 제306조를 삭제하고, 이런 삭제 규정은 ‘법 시행 이후 저지른 범죄부터 적용한다’고 부칙에서 규정했다.
2013년 6월19일부터 함께 시행된 개정 성폭력처벌법도 형법 개정으로 특례규정을 둘 필요가 없어지자 2013년 4월5일 특례규정을 삭제했다. 그런데, 개정 성폭력처벌법은 개정 형법과 달리 특례조항 삭제와 관련된 경과규정은 부칙에 따로 두지 않았다. 특례규정이 언제까지 유효한지 명시하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두 법 시행일인 2013년 6월19일 이전에 저지른 강제추행죄의 고소기간이 개정 이전 형법 규정대로 6개월인지, 아니면 개정 이전 성폭력처벌법의 특례규정대로 1년인지가 논란이 되게 됐다.
회사 경비원인 김아무개(61)씨의 강제추행 사건이 그런 경우였다. 김씨의 강제추행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ㄱ씨는 2012년 9월 하순께 김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뒤 다음 해인 2013년 8월27일 김씨를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의 강제추행 혐의 모두를 그대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인천지법 형사3부는 “ㄱ씨의 고소는 개정 이전의 형법에 따른 친고죄의 고소기간 6개월이 지난 뒤의 고소이므로, 이 부분 공소제기는 법률 규정을 위반한 무효”라며 ㄱ씨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선 공소를 기각했다. 대신 또 다른 피해자 ㄴ씨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만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 고소기간에 대한 원심의 이런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원심판결을 깨고 ㄱ씨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도 유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대법원은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의) 개정 경위와 취지를 고려하면, 개정 성폭력처벌법 시행일 이전에 저지른 친고죄인 성폭력범죄(강제추행죄)의 고소기간은 옛 성폭력처벌법의 특례조항에 따라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1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특례조항을 삭제한 것이 강제추행죄 등 성범죄의 고소기간을 6개월로 돌려놓으려는 게 아니라 형법의 친고죄 폐지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므로 개정 성폭력처벌법 시행 이전의 입법 공백기에도 고소기간은 그대로 1년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김씨 사건에서도 ㄱ씨에 대한 강제추행은 개정법 시행일인 2013년 6월19일 이전에 저질러진 만큼, 고소기간은 옛 성폭력처벌법의 특례조항에 따라 ㄱ씨가 범인을 알게 된 날인 2012년 9월 하순부터 1년이며 그 이전인 2013년 8월27일 제기한 고소는 적법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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