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이 있다. 기업이 이를 도입해 운영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직권조사 면제나 과징금 경감 등의 혜택을 준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전에 공정위 유관기관인 공정경쟁연합회(공경연)의 ‘컨설팅’을 거쳐야 하는데, 기업이 공경연에 내는 컨설팅 비용 수천만원이 공정위 퇴직자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쓰인 정황이 드러났다.
13일 <한겨레> 취재 결과, 공정위 퇴직자 재취업 알선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는 공정위 고위 간부를 지낸 퇴직자 3명이 ‘조사 무마’를 대가로 유한킴벌리로부터 각각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단서를 포착했다. 검찰은 이들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세 사람은 유한킴벌리에 ‘재취업’하지 않았다. 대신 유한킴벌리가 낸 컨설팅 비용 수천만원이 공경연을 거쳐 이들에게 전달됐다. 검찰은 이를 일종의 ‘돈세탁’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2015년 6월 공정위에 신고된 유한킴벌리 본사의 ‘갑질’ 사건 조사와 그 처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사건은 본사가 수년간 대리점에 과도한 목표를 설정해 잘 안 팔리는 물건을 강매하고, 목표를 채우지 못한 대리점주에게 대리점 포기 각서를 쓰게 했다는 게 핵심 의혹이었다. 공정거래법의 ‘거래상 지위남용’ 여부를 살피던 공정위는 이듬해 초 “양쪽 입장이 엇갈려 위법 여부를 가리는 게 불가능하다”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공정위 퇴직자들이 공정위 조사 관계자들을 접촉하는 등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공경연은 퇴직자를 통해 기업과 공정위를 연결하는 ‘로비 창구’ 구실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유한킴벌리가 컨설팅 명목으로 돈을 건네고, 공경연은 공정위 퇴직자에게 컨설팅 용역을 발주하는 방식으로 수천만원씩 지급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공경연에 의뢰해 해당 퇴직자 3명이 연구용역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정상적인 용역대가를 지불한 것일 뿐 로비 명목은 아니었다. 또 내용도 ‘시피’ 관련이 아닌 선진시장 관련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로써 공정위를 겨냥한 검찰 수사는 공정위 퇴직 간부 6명의 불법 취업 혐의(공직자윤리법 위반)와 퇴직 간부들의 취업을 대기업에 압박·청탁한 혐의(업무방해), 퇴직자를 통한 조사 무마 로비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 세 갈래가 됐다. 검찰은 공경연을 창구로 공정위에 로비한 다른 기업이 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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