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중학생 ㄴ군은 지난해 가을 ㄱ·ㄷ군에게 수행평가 모둠에 자신을 끼어주면 과제를 혼자 해결하고, 제시간에 못하면 ㄱ·ㄷ군이 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ㄴ군이 제시간에 숙제를 해내지 못하자 두 사람은 벌칙으로 “여학생에게 장난 고백을 하라”고 요구했다. ㄴ군은 고민 끝에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ㄹ양을 ‘장난 고백’ 상대로 골랐다. 쉬는 시간이 되자 이들은 ㅁ·ㅂ군 등 친구 3명과 함께 ㄹ양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야, 얘가 너 좋아한대.” ㅁ군의 말에 이를 구경하려고 학생 20~30명이 몰려들어 둘러쌌다. 누군가는 ㄹ양을 안게 하려고 ㄴ군을 계속 밀었고, ㅂ군은 ‘친구들을 웃기려’고 ㄹ양의 뒷머리를 때렸다. ㄷ군은 ㄹ양이 피하지 못하도록 교실 뒷문을 잠갔다. 이런 상황은 3분여 지속되다가 도우미 학생이 ㄹ양을 무리 밖으로 끌고 나온 뒤에야 겨우 끝났다. 이 과정에서 도우미 학생까지 ‘비난’을 받았다.
ㄱ군은 친구 5명과 함께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넘겨졌고 서면사과, 접촉·협박 금지, 사회봉사, 특별교육 처분을 받았다. 이에 ㄱ군 쪽은 “장난 고백을 요구했을 뿐 장애가 있는 피해학생을 지목하지 않았고, 때리거나 괴롭히는 데도 가담하지 않았다”며 다른 학생들과 같은 수준으로 징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성용)는 학교폭력과 성희롱 원인을 제공한 ㄱ군의 행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장애 학생이 수십명에게 둘러싸여 놀림감이 되고 모멸감과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을 텐데도 이를 유발한 최초 원인 제공을 했다. 고백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이후 과정에도 적극 동참해 책임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재발방지를 위해 교육적 차원의 처벌을 원하고 있고, ㄱ군이 피해 학생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없다. 장애인 사회봉사활동에 대한 교육적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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