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접수창구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환자수, 병원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대학병원 의사들의 진료실적을 평가하는 병원 내부규정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어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평가가 나왔다. 한겨레 자료 사진
병원 매출액 등 진료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대학병원 임상 전임교수의 겸임을 해지한 대학의 조처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런 교수 평가 기준이 병원의 과잉진료를 유발하게 되는 등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한양대학교가 박아무개 한양대 의대 교수의 한양대 구리병원 임상 전임교수 겸임 해지 조처를 취소하도록 한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청심사위 결정 취소 사건 상고심에서, 한양대 쪽의 상고를 기각해 원고패소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소청심사위원회에서 해지취소 결정을 받았던 박 교수는 임상 전임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환자수나 병원 매출액이 낮은 진료부서 교원을 해지심사 대상으로 규정한 한양대학교 의료원 규정은 목적의 정당성조차 인정할 수 없어 심사 자체가 위법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또 학교 쪽이 겸임해지 심사의 또 다른 이유로 삼은 ‘병원의 명예와 경영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데 대해서도 “이를 근거로 한 심사는 적법하지만, 박 교수에게 이에 해당하는 해지사유가 없다”며 학교 쪽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박 교수는 한양대 의대 전임강사였던 1995년부터 한양대 구리병원 정형외과 겸임·겸무 명령을 받아 임상 전임교수로 근무해왔으나, 2016년 2월 ‘진료실적이 낮고, 병원의 명예와 경영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임상 전임교수 겸임·겸무를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자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교원소청심사위가 “해지의 근거가 된 ‘의료원 겸임·겸무 시행세칙’ 규정이 교원의 지위를 불합리하게 제한한다”는 등의 이유로 해지 취소를 결정하자, 한양대 쪽이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한양대 의료원 겸임·겸무 시행세칙은 △최근 3년간 ‘진료실적’ 평균 점수가 50점에 미달하거나, 소속병원 전체 진료교원 평균 점수의 50%에 미달하는 사람 △‘병원의 명예와 경영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친 사람을 겸임·겸무 해지 심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진료실적은 순매출 50점을 비롯해 순매출 증가율, 타 병원과의 매출 비교, 환자수 등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진료실적을 기준으로 의대 교수를 평가하게 되면 임상 전임교수에게 병원의 매출액 증대라는 심리적 부담을 줘, 결과적으로 과잉진료를 유발하거나 의대생 및 전공의 등에게 의학연구 및 의료윤리 등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등 부작용을 가져올 염려가 있다”며 “시행세칙의 이런 규정은 그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고, 의료교육의 목적과 의사인 의대 교수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학교 쪽이 겸임해지의 또 다른 근거로 삼았던 ‘병원의 명예와 경영에 심대한 악영향’ 규정도 소청심사위의 결정과 달리 “그 자체로는 적법한 내부규칙이지만, 실제로 박 교수가 그런 해지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 겸무 해지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원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소청심사위가 내린 결정의 전제가 되는 이유와 법원이 행정소송에서 내린 판결의 이유가 다르더라도, 실제로 교원이 그런 내부규칙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소청심사위의 결정이 정당하다면 법원은 소청심사위 결정을 취소할 필요 없이 학교 쪽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진료실적’을 기준으로 한 한양대 의료원 겸임·겸무 심사 시행규칙의 심사근거 규정에 대해선 “목적의 정당성조차 인정할 수 없으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했으나, ‘병원의 명예와 경영에 심대한 악영향’을 이유로 한 또 다른 규정에 대해서는 “규정 자체는 적법하고, 이를 위법이라고 잘못 보고 해지를 취소하도록 한 소청심사위 결정은 법에 어긋난다”며 학교 쪽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반면에, 2심 재판부는 겸임·겸무 해지 심사 시행세칙의 심사근거 규정에 대한 위법과 적법 여부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판단 하면서도, “심사근거 규정이 적법하더라도 이에 해당하는 해지사유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이상 소청심사위의 결론을 정당하다”며 학교 쪽의 청구를 기각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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