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개인적·정치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검찰이 아닌 피고인이 입증해야 한다고 봐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 조상민 판사는 17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아무개(29)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오씨와 변호인은 “평화의 확산을 위해 폭력을 확대·재생산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입영할 수 없다는 개인적·정치적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판사는 “피고인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그 주장과 같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이전에도 공무집행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죄 등의 범행을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주거침입)죄를 저질러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후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피고인의 행적에 비춰보더라도 실제 피고인이 폭력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진심 어린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라고 조 판사는 지적했다. 다만 조 판사는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없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씨가 회원으로 가입한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는 보도자료를 내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평화를 향한 양심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을 규탄하며 항소심 등 법정 투쟁을 통해 정치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임재성 변호사는 “판결문에 적시된 집시법, 공무집행방해, 주거침입 등은 한국 사회의 사회운동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으로 평화적 신념에 배치되는 폭력전과라고 볼 수 없다”며 “형사재판은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데 판사가 피고인에게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재는 지난달 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국회는 2019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조항들에 대해서 헌재는 합헌 결정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6명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처벌 예외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법원의 처벌은 반대했다. 이에 오는 8월30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에 대한 공개변론을 앞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바꿀 지 주목되고 있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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