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사법개혁을 논의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위원장 이홍훈 전 대법관)’가 대법원장이 독점하던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사법행정회의 설치와 법원행정처 폐지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 반이 지나 나온 법원의 사법개혁안이다.
사법발전위는 17일 회의를 열고 법원행정처 개편 방안에 관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먼저 사법발전위는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기구로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하여야 한다”며 “법원조직법 개정 전이라도 대법원 규칙을 제정하여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자문기구로서 사법행정회의를 조속히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법발전위 건의문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 예산 등 사법행정사무를 사법행정회의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법발전위는 “사법행정회의는 대법원장을 의장으로 하고 대법원에 둔다”며 “위원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되, 적정한 수의 외부인사가 참여함이 바람직하다. 법관 위원 중 일정 수는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추천을 받아 임명한다”고 밝혔다. 법관만이 아니라 비법관인 외부 인사도 사법행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등이 추천하는 비법관들에게 사법행정을 맡기겠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법발전위는 국회 등이 개입하면 ‘정치적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국회 추천은 빼되 ‘적정한 수의 외부인사’ 참여를 보장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양자의 안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의 판사 뒷조사와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 농단’ 사태가 벌어진 원인으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탓에 내외부의 민주적 견제가 부족했다는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
사법발전위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대법원 운영조직과 사법행정 조직의 분리도 강조했다. 사법발전위는 “법원행정처는 폐지하고 사법행정에 관한 집행기관인 법원사무처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법원사무처에는 상근법관을 두지 않고 그 업무는 전문인력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박혔다. 또 “대법원을 운영하는 조직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며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장소적으로도 조속히 분리하여야 한다”고 사법발전위는 지적했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재판 업무를 떠나 행정처에서 사법행정을 전담하는 일부 판사들이 동료 판사들을 뒷조사하거나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문건 작성에 참여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특조단)’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행정처 출신 법관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행정처 차장의 대법관 제청이라는 인사 형태가 강화돼 행정처 근무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인사권이라는 구심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어진 업무에 기능적으로 함몰되는 관료로서의 성향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한 판사는 “행정처 탈판사화가 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화로 선고를 미뤄달라고 하거나 재판연구관에게 행정처 보고서를 넘기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행정처 근무자들이 판사가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특조단 조사결과 발표 뒤인 지난 5월31일 법원행정처 개혁 등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발전위를 출범시켜 법원행정처 개혁 등의 논의를 직접 요청했기 때문에, 사법발전위의 건의를 거절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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