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전과기록 말소와 보상 등 구제조처를 해야 한다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견해’(Views)가 있다고 해서 국회가 그런 구제조처를 입법할 의무는 없으며, 구제조처까지 입법할지 여부는 국회의 재량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양심적 병역거부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을 위반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전과기록을 말소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는 등 효과적인 구제조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견해’를 받아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국회가 그런 견해에 따른 입법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 청구가 법에 어긋난다’며 각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의 각하 결정은 심판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제기되거나 절차에 어긋날 경우 청구내용 자체에 대한 심리나 판단 없이 그대로 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헌재는 “대한민국이 자유권규약의 당사국으로서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견해를 존중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회에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견해에 언급된 구제조처를 그대로 이행하는 법률을 제정할 입법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입법부작위를 대상으로 한 이번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자유권규약위원회 심리가 서면으로 비공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위원회의 ‘견해’에 판결이나 결정과 같은 법적 구속력이 인정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 위원회의 견해가 규약 당사국의 국내법 질서와 충돌할 수 있고, 이행을 위해서는 각 나라의 사회적·정치적 상황 등이 고려될 필요도 있다. 그러므로 국회가 위원회 견해의 구체적 내용에 구속돼 모든 내용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의무를 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병역법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바 있다. 헌재는 “당시 정한 시한에 따라 국회는 2019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입법을 할 의무를 지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더해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전과기록 말소 등 구제조처를 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재량이 부여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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