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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불볕 아래 긴옷 입고 쪼그린채 조심조심 ‘유물’ 파내는 이곳

등록 2018-07-27 05:00수정 2018-07-27 10:03

2015년부터 진행된 아차산성 발굴조사, 내달말 종료예정
폭염 속 학예사들 팔토시·긴바지 등으로 무장하고 작업
에어컨 유혹에 무너질까… 식당 대신 도시락으로 점심
더위 이기는 비결은 자부심 “현장서 유물 발견하면 뿌듯”
지난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아차산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한 조사단원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아차산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한 조사단원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폭염에도 멈출 수 없는 일이 있다. 문화재 발굴도 그중 하나다. 추운 날에는 딱딱해진 흙을 파다가 유물이 손상될 수 있다. 비 오는 날엔 유물이 빗물에 떠내려갈 수 있다. 학예연구사들이 땡볕이 쏟아지는 날 구덩이 안에서 조그만 막대로 흙을 조심스레 털어내며 발굴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반소매 티 입고 오셨어요? 화상 입을 텐데….” 지난 25일 오전 10시께,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성(사적 234호) 발굴조사’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윤성호(41) 광진구 학예연구사가 기자를 보고 처음 꺼낸 말이다. 아차산 초입에서 발굴 현장까지 15분가량 산길을 따라 걸었다. 열기와 습기의 동시 습격으로 ‘가마솥’ 안을 걷는 느낌이었다. 수은주는 31도를 가리켰다. 땀이 몸을 푹 적셨다.

‘이곳은 문화재 발굴 현장입니다’ 입산 금지 펼침막이 보였다. 가파른 고개를 넘자 완만한 평지 곳곳에 쭈그려 앉아있는 이들이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재단법인 ‘한강문화재연구원’ 조사단 4명이 따가운 햇볕 아래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차산성은 광진구가 2015년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현장 조사를 하는 이들은 긴소매 옷이나 팔토시, 긴 바지 차림이었다. “조사 현장이 산이라 습기가 많아서 푹푹 찌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오늘은 비교적 덜 더워서 다행입니다.”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닦는 기자에게 윤 학예사가 웃으며 말했다.

전형근(47) 연구원은 50㎝쯤 파낸 흙구덩이 옆에 앉아있었다. 호미로 구덩이 벽을 조금씩 허물고 허문 벽을 들여다본 뒤, 다시 조금 허물고 들여다보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성벽 안쪽이 여러 시기에 걸쳐 조성됐을 것으로 보여서 어느 시대에 쌓인 건지 알아보려고 조사하고 있다”면서 “시기마다 흙의 질감, 색깔이 조금씩 달라 흙벽 단면을 보면 시대를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아무개(27) 연구원은 1m쯤 깊이의 구덩이 안에 있었다. 그는 아이스크림 막대보다 조금 더 큰 대나무 막대로 흙벽에 반쯤 모습을 드러낸 도기 속 흙을 세밀하게 ‘긁어내고’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이라고 박 연구원은 설명했다. 지금까지 흙을 절반 정도를 파냈는데, 이만큼 파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고 한다. 나머지 반을 하려면 또 한나절을 보내야 한다. 수건으로 땀을 닦던 박 연구원은 “호미로 파내면 유물이 훼손될 수 있어 나무막대로 한다. 그릇 아래쪽으로 유물이 있을 수 있어 더 조심스럽다”고 했다.

25일 오전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차산성 발굴조사 현장의 조사단원들이 폭염을 피하기 위해 설치한 그물막과 파라솔 아래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5일 오전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차산성 발굴조사 현장의 조사단원들이 폭염을 피하기 위해 설치한 그물막과 파라솔 아래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현장은 올해로 세 번째 여름을 맞았다. 삼국시대 주요 산성인 아차산성에서는 그동안 간헐적인 조사에서 신라 흔적이 주로 발견됐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삼국시대 격전지였던 이곳에 신라가 산성을 지은 것이 맞는지 의문이었다. 조사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손설빈(37) 연구원은 “이곳은 그동안 학계의 의구심을 풀 수 있는 중요한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80% 정도 조사가 마무리된 아차산성 발굴조사는 8월 말께 종료될 예정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언제 큰비나 태풍이 올지 몰라 폭염에도 조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위를 식힐 방법은 산 밑에서부터 들고 온 얼음물과 아이스팩, 손 선풍기뿐이다. 에어컨의 유혹에 무너질까 봐 점심도 식당 대신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이번 발굴 사업에 참여한 이승원 조사연구실장은 “23년 경력에 이번 조사 현장이 가장 더운 것 같다”고 말했다.

10분만 서 있어도 도망가고픈 더위를 이기는 비결은 따로 있었다. 학창시절 역사를 좋아해 사학과를 다닌 뒤 고고학자가 됐다는 박 연구원은 “조사하는 곳에서 유물이 발견되면 뿌듯하다. 3년간 다녀본 현장 중에 가장 덥지만 잘 이겨내고 있다”고 했다. 전 연구원도 “현장 자체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라 보람이 크다”고 말을 보탰다.

“한 연구결과를 봤는데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 중 하나가 고고학자래요.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 손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힘을 내지요.” 윤 학예사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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