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때인 2016년 법원에 접수된 검찰 수사기록들을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직보’해 온 의혹을 받는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적극 반격에 나섰지만, 오락가락 해명으로 논란은 되레 증폭되는 모양새다. 신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오후 10시께 서울고법 공보판사를 통해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최유정, 김수천 관련 사건과 최순실 등 언론에 크게 보도된 중대한 사건을 예규 취지에 따라 필요한 사항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사실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전·현직 법원 공무원 등 관련 사건으로 피의자 신병에 관한 사건은 필요적으로 보고해야 하고, 언론보도 사건 중 사안이 중대한 사건도 보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고책임자는 주무과장으로 돼 있으나, 해당 중요사건의 보고에 관한 결재라인은 ‘주무과장-국장-형사수석부장-법원장’으로 돼 있어 형사수석부장도 담당자의 한 사람이고, 긴급보고 사건의 경우 주무과장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의 담당자가 직접 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결재 담당자인 형사수석부장도 필요한 경우 보고할 수도 있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김수천 부장판사의 ‘법조비리’ 사건, 최순실씨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의 ‘국정농단’ 사건 등의 체포영장 및 구속영장 등을 법적 근거 없이 보고했다는 그간의 언론보도들에 대해 정면 반박한 것이다.
(▶【단독】양승태 행정처, 최순실 등 수사정보 ‘판사 직보’ 받았다)
하지만 신 부장판사가 언급한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 예규를 보면 ‘보고 담당자’는 ‘주무과장’(법원 공무원)이지 판사가 아니다. 이에 대해 신 부장판사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결재라인은) 예규가 아니라 실무를 따른 것”이라고 했다. 또 ‘문서화된 내부 지침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정대로 했다’는 애초 해명과는 달리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한발 뒤로 물러난 셈이다.
신 부장판사 스스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은 ‘보고시기’도 논란거리다. 해당 예규는 아직 재판에 넘어오지 않은 사건의 구속·압수수색영장에 대해선 영장 발부나 기각 등 최종 판단이 내려진 뒤 ‘종국보고’ 형식으로 하도록 규정한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자칫 수사나 영장판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신 부장판사는 최순실씨 등 사건에서 구속영장 등이 청구된 당일 행정처에 직접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 사건이 구속영장까지 보고할 수 있는 사안인지도 논란거리다. 해당 예규는 판결문과 공소장 및 구속영장 등을 보고할 수 있는 사건을 전·현직 법원 공무원 등 관련 사건으로 제한한다. 신 부장판사 스스로 ‘언론을 통해 보도된 중대사건’으로 규정한 최씨 등 사건은 구속영장 보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복수의 법조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중대사건’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자칫하면 보고 범위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행정처에 직접 보고한 문건 중에는 영장전담 판사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참고인 진술 등 수사기록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밖으로 유출됐을 경우 진술 번복 등이 우려돼 자칫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자료들이었다. 또 김수천 부장판사 사건에서는 “(수사가) 다른 판사들에게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수사를 보이콧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문건도 행정처에 보고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법원 공보판사가 신 부장판사의 입장을 기자단에 대신 전달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법의 또다른 부장판사는 “공보판사는 법원의 ‘공식’ 입장을 전하는 자리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만약 이번 사안으로 신 부장판사가 재판에 넘겨지면, 항소심을 서울고법에서 담당하게 된다. 공보판사가 형사피고인이 될 수 있는 개인의 입장을 ‘대변’해준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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