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가 고문 끝에 숨진 지 20년이 된 지난 2007년 1월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509호실에서 박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고인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있다. 당시 박 열사는 이 방에서 수사관들한테 물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사진공동취재단
6·10민주항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90)씨가 오늘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 등 수사기관의 지도부는 박씨의 궂긴 소식을 접하자마자 부산에 차려진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과거를 반성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인과 박 열사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박 열사의 친형 박종부(60)씨는 28일 오전 “지난해 1월 척추를 다친 뒤로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계시던 아버지가 오늘 새벽 5시50분께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박씨는 유족으로 종부씨와 박 열사의 누나 은숙(55)씨를 남겼다. 유족들은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고, 장지는 부산영락공원으로 정해졌다.
박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중이던 1987년 1월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은 그는 이튿날 숨졌고 박 열사의 죽음은 그해 6월 항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알려진 이 일은 지난해 12월 말 영화 <1987>이 개봉한 뒤 큰 인기를 끌면서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3월2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사랑의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나 사과 인사를 전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 쪽에 직접 사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난 2월 인권침해와 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는 재조사 사건으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선정한 뒤, 문무일 검찰총장은 병원에 입원 중이던 박 열사의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문 총장은 지난 3월 박씨를 직접 찾아 찾아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 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박 열사가 숨진지 31년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고,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1일 재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28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 마련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는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다. 연합뉴스.
검·경 지도부는 박 열사 아버지의 궂긴 소식을 들은 직후 부산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민 청장은 방명록에 “평생을 자식 잃은 한으로 살아오셨을 고인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인이 평생 바라셨던 민주·인권·민생경찰로 거듭 나겠다”고 추모의 글을 남겼고 “과거 경찰에 의해 소중한 자식을 잃은 고인이 평생 아파하다가 돌아가신 것을 경찰로서 너무 애통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도착한 문무일 검찰총창은 방명록에 “박정기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뜻, 박종철 열사가 꾸었던 민주주의의 꿈을 좇아 바른 검찰로 거듭나 수평적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데 이바지 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문 총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는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민영 정환봉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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