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노엄 촘스키가 쓴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세계화의 덫>….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7월, 국방부는 국내외 석학 등이 쓴 책을 포함한 23권을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북한 찬양’이라며 ‘불온서적’ 딱지를 붙이고 부대 반입을 금지했다. 도서관과 서점에 버젓이 비치된 대중적 인문교양서와 베스트셀러가 다수였지만, 국방부는 “무단 반입 시 장병 정신전력 저해요소가 될 수 있는 불온서적”이라고 전군에 ‘차단’을 지시했다.
이런 사실이 <한겨레> 보도로 알려지자, 당시 군법무관이던 지영준·박지웅·한창완·이환범·신성수·신종범씨 등 6명은 “표현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군은 지씨와 박씨를 파면하고, 한씨 등 나머지 4명은 감봉·근신·견책유예 등의 처분을 내렸다. 군 지휘계통을 문란하게 하고 집단행동을 해 복종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2009년 4월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부당 징계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고, 이 소송은 9년 넘게 진행됐다. 2010년 4월 1심 재판부는 지씨의 파면만 취소하고 나머지 5명의 징계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8월 2심 재판부는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만 수위가 과하다’며 두 사람의 파면 처분만 취소하고, 나머지 4명의 징계 수위는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군인도 국민으로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지만, 군인이라는 신분과 군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기본권은 특별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당시 법원의 판단 이유였다. 한씨 등 4명은 2011년 9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후 6년이 넘도록 판단을 내놓지 않는 방식으로 시간을 끌었고 결국 ‘양승태 대법원 최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대법원은 지난 4월에야 ‘징계 처분은 적법하다’는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 접수 이후 6년7개월, 정권이 두 차례나 바뀐 뒤였다.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문용선)는 30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리려면 법률적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또 이들의 헌법소원 제기가 군 복무 기강을 저해하는 집단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한씨 등 4명에 대한 징계 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군을 대리한 검찰이 재상고를 하지 않으면서 이들은 9년여 만에 부당 징계의 멍에를 벗게 됐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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