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후폭풍 (가능성 10%) -20” “기대값 -4.4”
31일 대법원이 추가 공개한 문건에는 미지의 숫자가 담긴 도표가 등장한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실이 작성한 ‘현안 관련 추가 물적 조사 여부 검토’ 문건(2017년 4월27일 작성)을 보면, 당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양승태 대법원 행정처가 향후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그 가능성을 수치화해 도표까지 그린 정황이 드러난다. ‘사법농단’의 단초가 드러날 때 양승태 대법원이 상황별 유불리를 따져 상황을 타개하려 애쓴 흔적이다. 지난해 4월18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하던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판사 동향을 파악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알려진 법원행정처 컴퓨터는 조사하지 못한 ‘반쪽짜리 조사 결과’였다. ‘추가 물적 조사’를 요구하는 판사들의 목소리가 나날이 거세지던 27일 법원행정처는 대응 전략을 분석한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의 도표를 살펴보면, ‘물적 조사 여부’, ‘의혹 발견 여부’ 두 가지 기준을 토대로 도출된 6가지 시나리오가 나온다. 행정처는 이 시나리오가 시행될 가능성을 퍼센트로 추측해 기대값까지 산출했다. 물적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는데 관련 의혹이 발견된다면 “최악의 후폭풍”이 예상된다며 ‘(가능성 10%) -20’이라는 수치를 달아놓고 이렇게 산출된 기대값은 ‘-4.4’라는 식이다. 행정처는 “(물적조사) 미실시로 인한 평균적 기댓값이 더 높으나, 최선의 기댓값은 물적 조사를 실시하고 특별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라며 “미실시를 하면서 기댓값을 높이려면 개선방안 논의에 집중될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적었다.
행정처는 추가 물적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와 실시하지 않는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향후 펼쳐질 정국을 예측하려 애썼다. 추가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를 상정한 뒤 ‘판사 블랙리스트’를 증명하는 자료 존재 유무를 나눠 상황별로 판사들의 반응을 추측하는 식이다. 추가 물적 조사를 진행할 경우 “관련자들의 컴퓨터 모두에 대해 조사를 하자는 요구가 비등하게 될 수 있고, 내용의 심각성·구체성에 따라 형사사건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분석 과정에는 ‘행정처 컴퓨터에 대한 외부기관의 강제 조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하는 내용도 나온다. 합당한 이유 없이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추가 물적 조사를 하지 않을 경우, 행정처는 “지속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사후 수습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면서 “단, 법원행정처 내의 컴퓨터에 대한 외부기관의 강제적인 조사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이므로 추가 물적 조사 자체는 끝까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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