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중인자) 제외의 경우 → 청와대·검찰 등과의 관계 악화”
“복면(가중인자) 포함의 경우 → 대법원(양형위)의 중립성 문제 제기”
31일 대법원이 추가 공개한 문건을 보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집회·시위자의 ‘복면 착용'을 가중처벌해야 하는지 살펴보며 가중 처벌 여부에 따라 청와대·검찰과 관계가 악화될까 우려한 내용이 나온다. 2016년 4월12일 대법원 당시 양형위원회(양형위)가 작성한 문건 ‘공무집행방해 관련 보고'를 살펴보면, 당시 ‘복면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국민의 양형 기준을 공정하게 살펴봐야 할 대법원이 청와대와의 관계를 고려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본 정황이 나온다.
이른바 ‘복면금지법’은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2015년 11월4일 민중총궐기 집회날, 집회시위법 위반 등으로 구속된 26명의 피의자 중 15명이 복면을 착용한 사실이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면을 쓴 시위자들을 테러단체 아이에스(IS·이슬람국가)에 빗대며 “복면 시위를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20여일 뒤 새누리당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가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해 가면이나 마스크 등 복면을 써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복면금지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고 야당 의원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양형위는 복면금지법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검토하면서 “최근 `복면금지법' 제정 관련,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돼 양형 기준에 ‘복면 착용’을 가중 요소로 넣을 경우 양형위원회가 BH(청와대)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양형위와 대법원은 분리된 독립위원회인 점, 심도 있는 논의와 다수결에 따른 결론인 점을 부각해 “대법원의 정치적 부담 경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듬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죄 양형 기준은 최종 의결됐다. 신원 확인을 피하기 위해 복면 등을 쓰고 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지르면 이를 계획적 범행으로 보고 형량 가중 요소로 고려하는 내용이다. 다만 직업 등 사생활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린 이들이 의도치 않게 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지른 경우는 가중 요소에서 제외됐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