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폭염 속 청소노동자의 10시간…땀과 악취가 온몸에 배어들었다

등록 2018-08-03 17:35수정 2018-08-03 20:13

[현장] 야간작업 청소노동자 동행 취재

최저기온 30도 초열대야 지속되지만
긴팔·긴바지·안전모 챙기는 ‘투명인간’

“하루에 27km 걸어 온 몸에 땀띠…
길바닥에 앉아있는 게 유일한 휴식”

음식물쓰레기 폐수중화 노동자
“악취에 하루에 옷 3번 갈아입어"
청소노동자 정아무개(38)씨가 지난 2일 저녁 9시께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재활용쓰레기를 추리고 묶어서 리어카에 실어 나르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청소노동자 정아무개(38)씨가 지난 2일 저녁 9시께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재활용쓰레기를 추리고 묶어서 리어카에 실어 나르고 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등부터 허벅지까지 온몸이 땀띠죠. 탈수를 막으려고 하루에 음료수 값만 만원씩 써요.”

밤 최저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열대야 현상이 이틀째 이어진 지난 2일 저녁 8시30분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정아무개(38)씨는 긴팔과 긴바지에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에 체감온도 37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그는 목장갑, 안전모 등으로 얼굴을 제외한 모든 몸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쓰레기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뾰족한 물건이나 위험 물질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유일한 안전장비였다.

그는 야간에 마포구 합정동과 상수동 등 대학가와 유흥가,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서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한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등이 뒤섞인 곳에서 재활용 쓰레기만 골라내 포대에 담고, 끈으로 묶어 리어카에 싣는다. 허리만큼 오는 포대를 리어카에 실어 쓰레기 수거 차량이 닿을 수 있는 큰 길가까지 가져 놓는 일을 수십번 반복한다. 하루에 포대를 몇 개나 나르냐는 질문에 그는 “100개는 족히 넘는다”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요일별로 구역을 나눠 매일 밤 리어카를 끌고 마포를 누비는 그는 “하루 27㎞ 정도를 걷는다”고 했다.

이날 밤 10시께 이미 20곳이 넘는 지역의 쓰레기를 수거한 그는 “이제 하이라이트 구간”이라며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있는 골목으로 안내했다. 언뜻 보기에도 스티로폼과 과일박스, 페트병 등이 골목 곳곳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 곳엔 스티로폼 100여개가 넘게 쌓여있어, 포대에 넣어 리어카에 실어 담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심장이 약한 편이라는 그는 2m가량 쓰레기가 쌓인 리어카를 양손으로 끌며 숨을 헐떡였다. 안전모 챙으로 땀이 뚝뚝 떨어지고 바지와 옷은 이미 젖어 몸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지저분해진 손으로 땀을 닦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의 곁을 지나는 행인 여럿이 냄새가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걸음에 속도를 붙였지만, 정씨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술집과 유흥가가 몰려있는 탓에 만취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는 “남아있는 쓰레기 작업량을 생각하면 그냥 죄송하다 하고 지나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에도 쓰레기 수거를 멈추지 않았다.

밤 11시께 큰 고비를 다 넘겼나 싶었는데, 맥주캔·과자봉지 등 재활용 쓰레기가 널브러진 골목을 만났다. 내용물을 일일이 비우는 것도 정씨 몫이었다. 얼마나 방치됐는지 개미가 들끓는 과자봉투 등을 손으로 비워내더니, 마침내 그가 일을 시작한 지 3시간여 만에 보도블록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여름엔 개미와 모기가 꼬여 잠시 누워있기도 어렵다고 했다. 3분이나 숨을 돌렸을까, 정씨는 이온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어섰다. 10시간 넘게 구석구석을 돌아야 하는 광활한 담당 지역을 생각하면 여유가 없다. 조선소와 도로포장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그는 “우리 같이 기술 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한테 이만한 돈 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면서 “덥고 냄새나고, 남들은 인상 찌푸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들어오려고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저녁 7시께 서울 송파구 하수처리업체 사업장의 온도가 50도에 육박하고 있다. 하수처리업체 노동자 제공
지난 2일 저녁 7시께 서울 송파구 하수처리업체 사업장의 온도가 50도에 육박하고 있다. 하수처리업체 노동자 제공
폭염에 더 심각해진 악취와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는 곳곳에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에서 폐수 중화 작업을 하는 박아무개(51)씨는 하루에 옷을 3번이나 갈아입는다고 했다. 50도가 넘는 온도에 습하기까지 한 지하 작업장에서 하루 11시간을 일하다 보면 온몸에 악취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는 “1~2분만 서 있어도 얼굴부터 다 젖는다. 폐수에서 나오는 습기와 악취에 폭염까지 겹쳐 견딜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 회사에 다니는 손아무개(58)씨는 “회사에서 아이스 조끼를 주지만 금세 녹아내린다. 악취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심해서 환기를 하는 일도 쉽지 않아 여름나기가 더 힘겹다”고 말했다.

글·사진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