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방송된 <도전! 골든벨> 908회에서 글씨가 보이지 않게 블러 처리된 이아무개양의 정답판. 누리집 갈무리
청소년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이 출연 학생의 정답판에 적힌 페미니즘 관련 문구를 모자이크 처리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방송된 한국방송(KBS) 1TV <도전! 골든벨> 908회(안양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 편)에선 ‘최후의 1인’에 도전한 이 학교 2학년 학생 이아무개양의 화이트보드 정답판 왼쪽 상단에 적힌 글씨가 보이지 않게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이 전파를 탔다.
방송이 나간 직후인 이날 8시께 이 학생으로 추정되는 한 트위터 이용자는 자신의 계정(@Daze_****)에 “골든벨 (방송에) 나가서 (화이트보드에) ‘동일범죄 동일처벌’ ‘낙태죄 폐지’를 써뒀는데 (제작진이) 다 가려버렸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동일범죄 동일처벌’ 문구는 지난 5월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여성 모델 안아무개(25)씨가 열흘 만에 구속된 ‘홍익대 크로키 모델 불법촬영 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구호로, 지난 4일까지 서울 혜화역 인근과 광화문에서 네 차례 열린 여성들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 쓰이고 있다. 이 문구에는 ‘불법촬영을 비롯한 사이버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당시 불법촬영 근절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은 사흘 만에 약 32만명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관련 기사: “불법촬영, 뿌리 뽑아달라” 홍대 모델사건이 불붙인 호소)
아울러 이 학생이 적은 ‘낙태죄(낙태한 여성과 낙태수술을 해준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 폐지’ 역시 국가가 여성을 인구 정책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수년동안 여성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다.
(▶관련 기사: “나는 사람이다, 자궁이 아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쪽은 <한겨레>에 “공영방송은 ‘첨예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정치적·종교적·문화적 이슈의 경우 한 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하고, 청소년 출연자가 이러한 이슈 다툼에 휘말려 입게 될 피해를 우려해 녹화 전 출연자들에게 ‘프로그램 취지를 벗어나는 멘트는 자제하라’고 사전에 고지해왔다”라며 “(그러나) 이번 사례를 통해 청소년들의 다양한 생각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과거 <도전! 골든벨>이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쓴 남학생의 정답판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방송에 내보냈으면서, 여학생의 ‘동일범죄 동일처벌’ ‘낙태죄 폐지’라는 문구만 가린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비판에 나섰다.
지난 3월18일에 방송된 <도전! 골든벨> 888회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가리지 않은 한 남학생의 정답판. 누리집 갈무리
실제 지난 3월18일 방송된 <도전! 골든벨> 888회(음성 대금고등학교 편)에는 한 남학생이 정답판 하단에 적은 ‘보이루’(여성이 성기를 비하하는 표현과 온라인 인사말 ‘하이루’의 합성어)라는 단어가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방송됐다.
이와 관련해 <한국방송>은 “인사 이동으로 <도전! 골든벨>의 제작진이 바뀌어 당시(3월) 해당 장면이 방송된 경위에 대해선 파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6일 오후 2시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골든벨_908회_모자이크_해명해’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 중이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