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의 ‘88 회칼 테러’ 피해자인 오홍근(76)씨가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테러 30년’ 세미나 겸 <펜의 자리, 칼의 자리> 출판기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임재우 기자
1988년 8월6일 아침 7시30분께 출근을 위해 강남대로에서 택시를 잡던 한 기자의 앞을 거구의 괴한 4명이 가로막았다. 괴한들은 “대공에서 조사할 것이 있다”며 다짜고짜 기자를 붙잡더니 왼쪽 허벅지를 칼로 찔렀다. 기자는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보니 병원이었다. 허벅지에는 길이 34㎝, 깊이 3~4㎝의 자상이 나있었다. 당시 <중앙경제신문>의 사회부장이던 오홍근(76)씨가 당한 ‘회칼 테러’ 사건이다.
국방부 조사 결과, 국군정보사령부 제701부대장 이규홍 준장이 오씨가 <월간 중앙>에 기고한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의 칼럼에 불만을 품고 꾸민 테러였다.
6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는 회칼 테러 30주년을 맞아 ‘오홍근 테러 30년, 군사문화는 청산되었나’ 세미나가 열렸다. ‘88 언론테러 기억모임’이 오씨의 책 <펜의 자리, 칼의 자리>의 출판기념회를 겸해 마련한 행사다. 오씨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종대 정의당 의원 등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군사문화’에 대해 논의했다. 공교롭게 정보사와 같은 뿌리인 국군기무사령부 개혁 논의가 한창인 와중에 개최된 세미나다.
1988년 8월28일 중앙경제 오홍근부장 테러사건의 범인인 정보사요원 3명이 현장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주범인 장교는 선고유예를 받고 요원들은 훗날 복직됐으며 군은 사과하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먼저 발언에 나선 한홍구 교수는 “군사정권이 흉악할 때도 거리에서 백주 테러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30여년에 걸친 군사독재가 마무리하고 민주화가 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과도기적 사건이라 본다”면서 “우리 사회에는 대학 내 위계문화 등 여전히 청산되어야 할 군사문화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할 의미는 잔존하는 군사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발언한 김종대 의원은 “최근 말이 많은 기무사 개혁은 30년 전 사건과 동일한 궤도에 놓여있다”면서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무사 개혁은 민간이 군을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단상에 선 오홍근씨는 감회가 깊어 보였다. 오씨는 군사문화가 병영 밖으로 ‘탈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이 제구실을 하면 군사문화도 꼬리를 감추게 될 것”이라며 “언론이 정치권력,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무엇보다 사주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회칼 테러에 굴하지 않은 기자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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