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학생 구본준·오유진·투빈·김민주(왼쪽부터)씨는 지난달 15일부터 20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만났다. 지난 17일 하미마을에서 만난 피해자 쯔엉티투 할머니 부부와 찍은 사진이다. 쯔엉티투 할머니는 1968년 1월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한국군에 의해 세 자녀 중 두 자녀를 잃었다. 구본준씨 제공
경희대학교 학생인 구본준(26)·오유진(20)·김민주(19)씨와 베트남 유학생 투빈(21)은 지난해 봄 한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시작한 ‘팀플’ 과제에 1년 반 넘게 매달리고 있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그들이 놓지 못하고 있는 과제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실상을 알리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구본준씨는 “베트남에서 유학 온 투빈과 세 명의 한국 학생이 의미 있게 해 볼 수 있는 과제를 고민하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들여다보게 됐다”며 “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고민과 베트남의 피해자들에게서 직접 들은 사연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 베트남전쟁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은 퐁니·퐁넛 마을에서 74명, 하미마을에서는 135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진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대학 입학 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김민주씨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해왔는데, 우리도 가해자였고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줬단 사실을 깨닫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꼭 사과의 뜻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달 15일부터 20일까지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마을 등 피해자들이 사는 지역을 직접 찾았다. 하미마을에서 만났던 피해자 쯔엉티투(80) 할머니는 1968년 1월 세 아이 중 둘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자신도 오른발이 잘리는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통역을 했던 투빈은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을 이번에야 제대로 알게 됐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감정을 조원들에게 오롯이 전해주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의 활동이 오히려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 깊게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다. 구본준씨는 “피해자 한 분이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화내고 증오해봤자 바뀌는 것이 없고 나만 힘들다. 그래서 묻어두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라고 전했다. “피해자들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사과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을 못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혼자서 그 고통을 다 감당하고 마무리하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죠.”(오유진씨)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봄 베트남 빈호아 마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옆에 추모비를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서울 뚝섬한강공원과 경희대학교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다룬 전시회도 열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오유진씨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 또래 젊은이들이 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베트남에 사과할’ 방법을 계속 찾아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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