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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박? 협조?…임종헌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등록 2018-08-15 11:58수정 2018-08-15 22:09

강희철의 법조외전(32) ‘USB 제출설’ 나도는 임 전 차장

검찰, “임 전 차장 본인만 아는 곳에서 저장장치 확보”
난관 겪는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할지 법조계가 주목
검찰이 지난 달 25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검찰이 지난 달 25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벌써 두 달이나 됐다.

지난 6월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저는 비록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미 이루어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하여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진실을 규명해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날 기자와 통화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우리한테 수사해 달라는 거네요. 낮은 수준의 수사 의뢰라고 할까. 아무튼 수사의 명분을 준 거니까, 우리가 잘 참고하고 고려해서 결정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 무렵 검찰은 김 대법원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보고 사건 배당과 수사팀 구성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수사가 8월15일로 두 달을 맞았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웬만한 수사는 진도가 상당히 나가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도 수사 착수에서 2개월쯤엔 나중에 공개된 혐의의 상당 부분이 확인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그렇지 않다. 아직도 수사 초입 단계에서 맴돌고 있다. 이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언제쯤 검찰에 출석할지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이다. 검찰을 흔히 무소불위 권력에 빗대지만, 법원이 영장을 내주지 않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당하면서 필요한 증거 수집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상황이다. 가령 7월24일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은 2010년 서울고법에서 근무할 때 박 전 처장의 배석판사였다.

“여러 기각 사유를 봤지만, ‘(압수수색 대상자의) 주거의 평온을 해칠 정도로 소명되지 않았다’는 건 정말 처음 봤다. 우린 오히려 사법부 수사라 눈높이를 더 높여서 청구했는데도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검찰 관계자 ㄱ)

이 부장이 명기한 기각 사유는 한동안 법조계에서 ‘블랙 유머’로 화제에 올랐다. 그래도 법원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그 뒤로도 법원의 인정사정없는 영장기각은 계속됐다. “언론에 보도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오픈(공개)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도 있지 않겠나. 아무튼 이 사건 영장은 ‘웬만하면 안 내준다’가 법원 방침인 것 같다.” (검찰 관계자 ㄴ)

그렇다고 법원행정처의 자료 제출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두 달 전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다짐했지만, 화려한 약속과 현실은 사뭇 다르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의혹과 관련된 문건의 생산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법원행정처 내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 윤리감사관실, 인사심의관실 등의 자료와 의혹 당사자들의 이메일, 메신저 수·발신 내역 등은 제출을 거부한 상태다.

“자료 달라고 하면 미적미적하다 마지 못해 몇 개 내주고 하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고 의미 있는 자료가 많은 것도 아니다.” (검찰 관계자 ㄴ)

검찰에 출석한 판사들의 태도는 어떨까.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문제의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현직 법관들이 하나둘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고 있지만, 진술 태도는 제각각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 엉뚱한 진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부인하는 경우도 있고, 순순히 시인하는 사람도 있고.” (검찰 관계자 ㄷ)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한겨레> 자료사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 수사에 조금씩 진전이 있는 데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기여’(?)가 크다. 검찰은 그에게서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 작성하거나 보고 받은 주요 문건과 메모 등이 들어 있는 유에스비(USB) 저장장치를 확보해 수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즘 언론에 보도되는 관련 사안의 상당 부분이 이 문건에서 찾아졌다는 후문이다. “의미 있는 자료는 대법원이 아니라 그 유에스비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검찰 핵심 관계자) 꽉 막힌 수사의 ‘돌파구’가 손톱 크기만 한 이동식 저장장치에서 찾아진 셈이다.

이 유에스비가 검찰에 확보된 경위를 두고는 ‘자진 제출’과 ‘어쩌다 진술’, 두 가지 설이 엇갈린다. 전자는 이번 수사에서 ‘독박’의 위험을 감지한 임 전 차장이 검찰에 유에스비를 자진해서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법 농단의 ‘실행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는 듯한 발언을 했고, 법원이 유독 자신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만 발부하자 혼자 뒤집어 쓸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붙는다.

후자는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의 추궁에 할 수 없이 유에스비의 소재를 털어놨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사용하는 피시(PC)를 압수수색하던 검사가 다수 파일이 유에스비에 복사된 사실을 파악하고는 ‘이 유에스비는 어디에 뒀느냐’고 소재를 캐묻자 얼떨결에 혹은 마지 못해 실토를 했다는 것이다. 그와 가까운 한 변호사는 “형사재판하면서 검찰 수사기록을 수없이 봤을 텐데, 정작 자신의 일이 되니 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현재로썬 어느 쪽이 맞은 지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팩트를 알만한 위치에 있는 검찰 관계자는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애초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사무실 직원 가방’은 (사실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임 전 차장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장소에서 이 유에스비가 나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의 유에스비가 검찰에 넘겨진 실제 상황은 단순한 흥미 때문이 아니라 임 전 차장의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임 전 차장의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보면, 검찰은 잇단 압수수색영장의 기각으로 유력한 증거를 확보할 기회와 타이밍을 놓쳤다. 검찰의 영장 청구 사실과 범위, 대상자가 노출되면서 관련자들로서는 ‘대비’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생겼다. 혹시라도 갖고 있던 자료가 있었다면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고, 끼리끼리 말을 맞출 시간도 충분하다. 게다가 ‘김명수 대법원’이 지금껏 보여준 미온적인 태도를 바꿀 리도 없어 보인다.

이런 독특한 수사 환경 탓에 임종헌 전 차장 등 핵심 관련자들의 진술 태도와 협조 여부가 더욱 중요해졌다. “임 전 차장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검찰 핵심 관계자)지만, 정상적인 증거 수집 경로가 상당 부분 차단된 검찰로서는 당시 대법원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임 전 차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임 전 차장이 실제 검찰에 출석해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그 자신의 형사적인 유, 불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은 일찌감치 선임한 검찰 출신 김창희(사법연수원 22기) 변호사 말고도 친분이 두터운 변호사들과 상의하며 검찰 소환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그 양반 변호인이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어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겠죠. 하나는 김백준 씨나 이헌수 전 국정원 실장처럼 자신이 아는 걸 검찰에서 모두 진술하는 겁니다. 근데 그렇게 하고 나서도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지 못하면 ‘리스크’가 없어지는 게 아니죠. 우린 공식적으로 플리바게닝(유죄협상) 제도가 없으니까 결국은 검찰이 기소를 하게 될 텐데, 김백준 씨도 그렇게 됐잖아요. 이헌수 전 실장은 불구속 기소됐다가 심지어 1심에서 실형이 났죠. 다른 하나는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처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김 전 비서관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는 ‘윗선’을 끝내 진술하지 않았죠. 많은 사람들이 상관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건 본인의 리스크를 헤지(hedge)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윗선을 대는 순간, 자신도 공범으로 엮일 테니까요. 결국 함구한 김 전 비서관은 국정원 특활비 뇌물 혐의에 무죄를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죠. 실은 저도 궁금합니다. 임 전 차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검찰 출신 변호사)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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