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때 다른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하면 사기죄가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대출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금융기관 직원을 속여 3천만원을 대출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직장인 김아무개(34)씨의 사기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지법 형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는 2016년 6월16일 인터넷 대출시스템을 통해 ㅎ저축은행에 3천만원의 대출을 신청한 뒤 전화로 대출심사를 받으면서 담당 직원의 질문을 받고 ‘동시에 다른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했다. 김씨는 같은 날 ㅎ저축은행 외에 ㅈ저축은행에도 2천만원의 대출을 신청했으며, 기존 채무도 6820만원가량 있어 매월 원리금으로 180만원을 내야 했던 형편이었다. 김씨는 대출 6개월 뒤인 2016년 12월부터 ㅎ저축은행 대출금의 원리금을 연체하다가 2017년 1월 신용회복위원회에 여러 금융기관 채무 1억1500만원에 대한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을 신청했다.
1·2심 재판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김씨가 은행을 속이려 했다고 보기 어렵고, 김씨의 거짓말과 은행의 대출 승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원심 재판부는 “김씨가 성과급을 제외하고도 월 230만원의 소득이 있어 대출금 변제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객이 자신의 신용상태나 대출 계획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더라도, 은행으로서는 여심심사위원회·여신심사기준 등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피해자인 ㅎ저축은행도 대출 희망자인 김씨의 신용 정보를 정상적으로 조회해 대출실행 여부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런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거래 상대방이 사실을 제대로 전달받았다면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 그런 거래로 재물을 받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에게 그런 사정을 알릴 의무가 있다. 이를 밝히지 않았다면 상대를 속인 것이 되어, 사기죄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서 김씨가 대출 상황을 제대로 밝혔더라면 ㅎ저축은행이 대출을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사기죄가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ㅎ저축은행에서 원리금 균등상환으로 60개월 동안 매월 92만1561원씩 납부하는 조건으로 대출을 받았는데, 다른 각종 채무를 감안하면 월 230만원의 급여와 연 1500만원 정도의 성과급 등 김씨 수입으로는 상환이 불가능한 채무”라며 “ㅎ저축은행으로서는 다른 금융회사에 동시에 진행중인 대출이 있다는 고지를 받았더라면 대출을 해주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하면 김씨의 기망 행위와 은행 대출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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