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사찰 등 각종 문건을 작성하게 하고 재판정보 빼낸 혐의를 받고 있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차관급인 고법부장급 고위법관 첫 피의자 소환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이규진(56·사법연수원 18기)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3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고등부장급(차관 예우) 고위법관에 대한 피의자 소환은 이 사건 착수 이후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이날 오전 9시40분께 이 부장판사를 불러 재판개입, 법관사찰 등 관련 의혹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취재진에 “한없이 참담하고 부끄럽다. 검찰에 출석해서 진술을 하게된 이상 아는대로 그리고 사실대로 진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병대, 임종헌 처장의 지시를 받았냐’를 묻는 질문에 “아는만큼 검찰에 진술하겠다’고 답하고 조사실로 향했다.
이 부장판사는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지시에 따라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법관 모임에 압력을 넣은 혐의 등을 받는다.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외형상 법원행정처로부터 독립된 직위지만 양 대법원장 시절엔 법원행정처장의 지시를 받는 ‘양형실장’ 노릇을 했다.
특히, 그는 이현숙 전 통합진보당 전북도 의원이 2015년 제기한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 땐 담당 재판부 심증을 빼내 선고기일 연기를 요청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의혹도 받는다. 또 지난해 2월 김민수 부장판사 등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공용서류’인 법관사찰 관련 문건들을 삭제하라고 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아울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헌법재판소 파견이었던 최아무개 판사에게 헌재 내부 자료와 재판관들의 합의 내용을 유출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최 판사가 유출한 내용 중에는 업무방해죄 관련 헌법소원 사건, 과거사 사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관련 판사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 부장판사의 지시에 따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 부장판사에 대한 피의자 조사로 이번 사법농단 의혹 수사는 실무자급에서 지시자급으로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양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이 이번 사법농단에 얼마만큼 관여돼 있는지, 직접 지시했는지 등등에 대해 이 부장판사가 어떤 진술을 내놓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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