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충남 천안시에 사는 홀몸노인 이태권(가명·70)씨가 창문을 열어놓은 채 방에 앉아 있다. 이씨는 두 차례 다리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하다.
“천둥, 번개가 칠 경우 대피하고 집 안 창문은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태풍 ‘솔릭’이 느릿느릿 상륙을 준비하던 23일 오후 3시께,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한 주택가에는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안내방송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지은 지 30년은 넘어 보이는 오래된 단독주택 안에서 이순희(가명·82)씨가 멍하니 앉아 ‘재난 방송’이 나오는 텔레비전만 바라봤다. 낮인데도 집 안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했다. 전기요금을 아끼려 전등을 모두 꺼놓은 탓이다. 어느새 나무가 흔들릴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지만, 이씨 방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창문을 닫고 창틀에 테이프를 붙여야 한다”는 말에 이씨는 “다리에 힘이 없는데 어떻게 테이프를 붙이느냐”고 했다.
홀몸노인인 이씨는 지난해 겨울 부러진 고관절을 수술한 뒤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거실에서 미끄러져 쓰러진 이씨를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인 이정숙씨가 다음날 아침에야 발견했다. 당시 이씨는 고관절이 부러진 채 저체온증에 빠져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고 한다. “할머님, 현관문이랑 창문은 꼭 닫고 주무셔야 해요.” 귀가 안 좋은 이씨에게 몇번이나 소리 지르듯 말한 뒤에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가 켜놓은 텔레비전에 ‘솔빅, 최대 풍속 60m 기록’이라는 자막이 떴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있는 홀몸노인들은 다가오는 태풍에 무방비 상태였다. 이씨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낡은 빌라에는 또 다른 홀몸노인 이태권(가명·70)씨가 산다. 빌라 입구와 계단 곳곳에 부서지거나 금 간 흔적이 있었다. 이씨는 3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술에 의지해 살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베란다나 빗물받이가 없어 창문으로 비바람이 곧바로 몰아친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두 차례 수술로 걷는 일조차 힘든 이씨에게 태풍 준비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작은 바람에도 나무로 된 창문틀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에 소속된 생활관리사는 모두 60여명으로 관내 1550명의 홀몸노인을 돌보고 있다. 관리사 한명이 25~30명의 어르신을 매일같이 챙기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건강상태를 체크하거나 끼니를 챙기는 정도가 전부다. 복지관 관계자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휴대전화가 없고 거동이 불편해 직접 방문해 살펴볼 수밖에 없다”며 “특히 폭염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노인분들을 찾아가 행동 요령을 전달하는 것이 관리사들의 핵심 업무”라고 설명했다.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은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 대비해 24일 예정된 복지관 교육 프로그램을 모두 중단했다.
글·사진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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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19호 태풍 솔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