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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황산이 온몸에 쏟아진 그 날 이후…성대도 웃음도 잃었습니다

등록 2018-08-28 01:29수정 2018-08-29 08:32

2018 나눔꽃 캠페인
5년전 산재로 몸 망가진 아빠

택배상자에 구멍나 황산 쏟아져
“그날 기도와 성대가 붙어버려”
폐질환·기도협착·천식 고통

수술비·생활비에 빚만 8천만원
아픈 몸으로 두 아들 돌보며 버텨
“운동을 이렇게 좋아하는데도
합기도 체육관비도 못내주는 처지”
막내 아들 유준호(오른쪽)군과 둘째 아들 유준현(오른쪽)군이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집 마당에서 아버지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세 부자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지은지 30년이 지나 구들장이 내려앉고 천장에서는 비가 샌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막내 아들 유준호(오른쪽)군과 둘째 아들 유준현(오른쪽)군이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집 마당에서 아버지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세 부자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지은지 30년이 지나 구들장이 내려앉고 천장에서는 비가 샌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13일 오후 2시 충북 제천시의 한 주택 앞, 유성우(52·이하 모두 가명)씨가 운동을 좋아하는 두 아들 준현(14), 준호(10)군과 배드민턴을 했다. 마주 보고 있는 아빠를 향해 둘째 아들 준현이가 셔틀콕을 날렸다. 준현이가 친 공은 유씨의 머리 위를 지나 바로 등 뒤로 떨어졌다. 유씨는 준현이가 자신에게 보낸 셔틀콕을 하나도 받아치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될 것 같은데, 유씨는 셔틀콕을 향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는 움직이면 숨이 차고 기침이 나서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유씨는 속을 게워내 듯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3년 만에 다시 라켓을 잡아봤는데, 역시 안 되겠네요.”

두 아들과 함께 허름한 단독 주택에 사는 유씨는 겉보기엔 건강한 장년이었다. 하지만 5년 전 황산을 뒤집어쓰는 산업재해를 입어 몸 곳곳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날 성대를 잃은 유씨는 쇳소리를 내며 말하게 됐고, 살이 달라붙어 기도가 좁아져 편하게 숨을 쉬지도 못한다. “호흡이 힘들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특히 팔꿈치 안쪽이나 사타구니처럼 관절이 접히는 부분은 피부가 심하게 엉겨붙어 있어요.” 치료하러 온 의료진에게 “차라리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사고였다.

그렁그렁 호흡을 모은 유씨가 속삭이듯 말하며 ‘그날’ 일을 설명했다. “2013년 4월13일이었어요. 원래 택배 일을 했는데 누가 황산을 택배로 보냈어요. 위험 물질 표시를 안 해놔서 황산인 줄 몰랐죠. 박스를 지게차로 들어서 차에 싣는데, 지게 발에 찍혀서 박스에 구멍이 났어요. 황산이 확 뿜어져 나왔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산을 뒤집어썼어요.” 유씨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고 당시 자신의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유씨는 목에 구멍이 뚫은 모습이었다.

유씨는 당시 사고가 호흡기에 특히 악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사고 당시에 기도가 협착됐어요. 기도가 좁아졌고 성대도 붙어버렸고…. 한동안 삽입관을 넣어 구멍을 뚫고 살았어요.” 다시 살아보려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수술했지만, 유씨는 결국 성대를 다 들어냈다. 목 앞쪽에 남아있는 수술 자국을 가리키며 유씨가 말을 이어갔다. “성대가 사라졌고, 폐쇄성 폐 질환·기도협착·천식을 앓고 있어요. 몸속에 여전히 화기가 남아 있어 많이 움직여서도 안 되고 호흡을 과하게 해도 안 되는 상태입니다.” 1년 반 넘게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그는 이듬해 11월 퇴원했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의 세포가 터질 듯 큰기침이 나서” 퇴원 이후로도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 누워서 보내고 있다.

유성우씨가 복용하는 호흡기 치료약이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집 안방에 놓여 있다. 유씨는 황산 누출 사고로 호흡기에 화상을 입는 산업재해를 당해 폐질환과 천식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유성우씨가 복용하는 호흡기 치료약이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집 안방에 놓여 있다. 유씨는 황산 누출 사고로 호흡기에 화상을 입는 산업재해를 당해 폐질환과 천식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준현이와 준호 형제는 또래 아이들처럼 밝고 장난기가 많지만, 아빠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종종 “허전하고 외롭다”고 했다. 아빠가 아직도 수시로 병원에 가고 입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유씨는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든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지난 달에도 좁아진 기도를 넓히는 재수술을 했다. 형제는 “아빠가 병원에 가면 학교 끝나고 저녁에 집에 왔을 때 쓸쓸해요. 같이 있고 싶은데, 아빠가 병원에 가는 날이 너무 자주 돌아와요”라고 말했다. 준현이는 “다친 뒤로 아빠는 금방 지쳐요. 원래는 같이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배드민턴도 자주 했는데…. 이제는 같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각자 텔레비전만 봐요”라고 말했다. 형의 이야기를 듣던 동생 준호도 “아빠랑 같이 운동을 못 하는 게 제일 아쉬워요”라고 거들었다.

사고 이후 유씨가 일을 못 하게 되자 가족의 생계도 급격히 어려워졌다. 전에 없던 수천만원의 빚이 생겼다. “사고 전에도 여유 있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택배 일을 하면서 남에게 빚 지지 않고 세 식구가 살았어요. 하지만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병원비와 생활비를 모두 빚으로 충당하게 됐습니다.” 지난 5년간 치료와 생활비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어느새 8천만원이 넘었다. “지난 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전기요금, 수도요금도 몇 달씩 못 내서 끊겼고, 아이들이 운동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유일하게 다니고 있는 합기도 체육관비도 낼 수가 없었어요. 일년 내내 빚쟁이들에게 쫓겼고, 결국 검찰과 법원에 수차례 들락거리며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유씨 가족의 수입은 유씨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으면서 받게 된 요양장해급여 등 한 달 112만원이 전부다. 수천만원의 빚을 갚기는커녕, 한 달 생활비로 쓰기에도 한참 모자란다. “식비와 공과금, 병원비 등을 쓰려면 못해도 한 달에 160~170만원은 있어야 하더라고요. 애들이 한창 클 때니까 옷도 계속 사줘야 하고 음식도 잘 먹여야 하는데, 당장은 방법이 없어요.” 유씨는 “모자란 돈은 계속 주변 사람들한테 빌리면서 빚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빌릴 만큼 빌려서 더 이상은 안 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구걸하듯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젠 이것도 더 해낼 재간이 없네요.”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유씨가 어느새 고개를 떨궜다.

먹을거리, 입을거리 걱정에 깨끗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이미 희망사항의 저 뒤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유씨네 삼부자는 시멘트벽 위에 합판을 얹어놓은 가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온과 단열이 전혀 안 돼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이면 한증막처럼 푹푹 찝니다.” 유씨는 “역대급 폭염이라는 이번 여름은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거실에 작은 에어컨이 한 대 있지만 전기요금이 무서워 켤 수 없었다. 통풍도 원활하지 않아 천장과 벽에는 시커멓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데 집안 공기가 탁해서 신경이 많이 쓰여요.” 유씨가 또다시 기침을 하며 말했다.

유준호(왼쪽)군과 형 유준현군이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집 앞 골목에서 서로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치겠다며 채를 놓고 다투고 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유준호(왼쪽)군과 형 유준현군이 13일 오후 충북 제천시 집 앞 골목에서 서로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치겠다며 채를 놓고 다투고 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곧 사춘기가 닥쳐올 준현, 준호 형제는 아버지 마음이라도 아플까 내색은 않지만 불편함은 어쩔 수 없는 눈치다. 형제가 쓰는 방은 구들장이 들떠서 가구를 제대로 세워둘 수조차 없다. 서랍장과 바닥 사이에 종이를 몇겹으로 겹쳐서 겨우 수평을 맞춰놓았다. 가족들이 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실은 비가 오면 항상 천장에서 물이 샌다. “며칠 전에도 빗물이 너무 많이 새서 직접 옥상에 올라가 방수 페인트를 바르고 내려왔어요. 이번엔 또 얼마나 가려나 걱정이지만요.” 유씨의 팔다리 곳곳에는 공사하다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입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유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홀로 두 아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애들 엄마와는 오래전에 헤어졌어요. 엄마 없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옷이라도 최대한 깨끗하게 입히려고 노력해요. 다행히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고, 형제끼리 사이도 좋아서 그런 부분은 정말 고맙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 이따금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이 온다”고 한다. “아픈 이후로 생긴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쫓길 때면 너무나 비참합니다. 아이들은 고아원으로 보내고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어요. 그러지 말아야겠지만….”

<한겨레>와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다음 날, 유씨는 기도를 확장하는 다섯 번째 재수술을 예정돼 있었다. “건강이 나빠져서 재수술을 받아야 할 때면 불안한 생각도 들어요. ‘이러다 아이들이 다 크기 전에 잘못되면 어쩌나’ 하면서요. 처음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건강이 더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까 스스로 점점 작아지네요.” 유씨는 옆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두 아들을 바라봤다. “제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아요. 건강이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커가는 아들의 모습을 건강하게 지켜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말하며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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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우(이하 모두 가명)씨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누리집(www.childfund.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 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연락해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유성우씨 가족의 주거비 및 생활안정지원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준현이와 준호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2000만원 이상이 모금되면, 유성우씨의 뜻에 따라 다른 위기가정 지원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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