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에어컨 전문가가 방문하지 못해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자신의 체포를 알리고 증거를 인멸하려는 듯한 알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했습니다”
30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양중진) 소속 차범준 검사가 지난 10일 ‘증거인멸의 증거’라며 법원에 제출한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 김아무개씨의 구속영장 청구서엔 이런 문구가 기재돼 있다. 이 청구서로 김씨는 다음날 구속됐지만, 이후 문자메시지는 20여일 전 경찰 수사팀 공용 휴대전화에 수신된 것으로 김씨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지킴이’를 자임하는 검사가 ‘어제 에어컨 전문가가 방문하지 못했다’는 말을 왜 김씨의 증거인멸 단서로 판단했는지에 대해 의문이나 확인도 없이 덜컥 영장을 청구한 셈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양 부장검사나 차 검사를 그대로 수사팀에 남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지역 한 검사는 “저런 기본적인 확인도 안 하고 어떻게 영장을 청구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씨 쪽 얘기를 들어보면 엉터리 증거가 첨부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검찰은 경찰을 두둔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검찰이 제출한 영장청구서에는 문제의 문자메시지는 김씨가 ‘변호인’에게 전화를 한다며 ‘김아무개 경위의 휴대전화’를 빌려 보내졌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해당 휴대전화는 경찰 수사팀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었고 또 변호사와 통화하거나 시도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 쪽 장경욱 변호사는 “무슨 근거로 변호사와 통화하려 했다고 영장에 적었느냐고 물으니 차 검사가 ‘김씨가 통화기록을 삭제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럼 포렌식을 하자’고 제안하니, 그 대신 지문감식을 했다”며 “검사에게도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증거조작이 또다시 벌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수사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김씨는 경찰 수사팀을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 수사팀에 대해선 조사해달라고 수사 의뢰했다. 관련 경찰관들이 “단순한 실수”라고 의혹을 부인하는 주장을 하고 있어 말맞추기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지수사부 대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남우)에 배당돼 있고, 경찰 쪽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 변호사는 “본인들 잘못으로 구속 사유가 바뀌었으면 일단 구속을 취소하는 게 맞고, 만약에 다른 혐의가 있다면 다시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상식 아니냐”며 “대검에 증거조작을 발견 못 한 건 중대과실이니 검찰 수사팀을 교체해달라고 했지만 ‘중앙지검에서 자체 조사 중’이라고만 답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엉뚱한 문자메시지가 증거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 실수로 유우성 사건 때 증거조작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김씨는 문자메시지 때문에만 구속된 건 아니다. 다른 것(혐의)도 많다”며 수사강행 의지를 밝혔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