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직 판사의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재판 과정에 개입하려는 법원행정처의 계획이 실현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관, 법원장, 재판부가 총동원돼 재판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3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30일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현 변호사)을 불러 조사했다. 윤 전 고법원장은 검찰에서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고, 요구 사항을 재판부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부산고법에서는 건설업자 정아무개씨가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5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당시 행정처는 부산고법 문아무개 판사가 정씨로부터 향응을 받고 재판 정보를 유출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을 검찰에서 통보받았고, 관련 비위를 무마하기 위해 정씨 재판에 개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2016년 9월 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은 ‘(문 판사의) 개입이 사실로 보인다’, ‘항소심은 제대로 한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 ‘1~2차례 증인신문을 추가로 열어 검찰의 불만을 줄일 필요가 있다’ 등 내용이 담긴 문건과 ‘처장님 말씀자료’를 만들었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일 퇴임한 고영한 전 대법관이다.
윤 전 고법원장은 이같은 내용을 재판장인 김아무개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실제 재판은 행정처 각본대로 흘러갔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를 연기하고, 그해 11월 두 차례 변론을 더 열었다. 이듬해 2월에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정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는데,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유죄 선고로 검찰의 반발을 무마시키면서도, 구속은 피하게 해줘 정씨도 만족시킨 것이다.
행정처와 재판부 사이에서 ‘연결고리’ 구실을 한 윤 전 고법원장이 입을 열면서,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조만간 재판장인 김 부장판사, 고 전 대법관 등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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