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이 법관 비리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한겨레> 7월26일치 10면)과 관련해, 검찰이 “고 전 대법관으로부터 직접 재판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받았다”는 당시 법원장의 진술을 확보했다.
31일 <한겨레> 취재 결과,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 개입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30일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현 변호사)을 불러 조사했다. 2016년 윤 고법원장 재임 당시 부산고법에서는 건설업자 정아무개씨의 뇌물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법원 문아무개 판사가 정씨에게 향응을 받고 재판 정보를 유출한 정황을 검찰에서 통보받고도, 징계 대신 사건 무마에 나섰다. 특히 고 처장이 직접 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1~2차례 증인신문을 추가로 열어 검찰의 불만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항소심은 제대로 한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 등 재판 개입을 추진한 정황이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윤 전 고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고영한 당시 처장으로부터 직접 전화로 문 판사 관련 의혹과 요구사항을 전달받았고, 재판장을 불러 그대로 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까지 깊숙이 개입했음을 전직 고위법관이 증언한 것으로, 행정처 문건 내용이 ‘단순 검토’ 수준이 아닌 ‘실제 실행’됐음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 전 원장은 고 전 대법관의 요구사항을 정씨 사건 재판장인 김아무개 부장판사에게 전달했고, 이후 재판은 행정처 ‘각본’대로 진행됐다. 검찰은 조만간 김 부장판사와 지난 1일 퇴임한 고 전 대법관 등을 불러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승태 행정처가 2014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집행정지 결정에 재항고한 고용노동부 쪽 소송서류를 대필해줬다는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서, 법원은 이 사건 주심이었던 고 전 대법관과 당시 재판연구관의 집과 사무실, 박근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과 법무비서관, 고용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밤 영장을 기각하며 “행정처와 청와대가 재항고 이유서 등을 주고받았다면 이메일을 이용했을 개연성이 크다. 사무실 등 장소 압수수색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검찰은 “주관적 추측과 예단으로 영장을 기각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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